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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용 목사의 ‘복음 설교’] 하나님의 헤세드가 임할 때 (1)

룻기 3장 1~11절


룻기는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의미한다. 룻기에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성실과 열심이 잘 나타나 있으며 이것이 곧 헤세드이다. 본 장에서는 하나님의 헤세드가 이미 나오미의 가정에 임하고 있지만, 그것이 구체화 되고 현실화하기 이전이다. 나오미와 룻은 보아스의 은혜로 당분간 연명할 수 있는 양식을 얻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몇 달 있으면 그 양식은 떨어진다.

우리의 삶 속에 분명한 하나님의 헤세드가 있다고 여겨지지만 확실한 무언가가 보이지 않을 때 우리가 취할 행동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헤세드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가. 그것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행하는 것’이다.

본 장은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줍기를 시작했던 때에서 약 7주가 지난 후이다. 그 사이에 보아스와 룻은 서로가 친척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오미는 자신에게 큰 은혜를 베푼 보아스가 자신의 친척임을 알고 이제 보아스가 자신의 가정을 책임지겠다고 할 것을 기대한다. 그런데 보아스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때 나오미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나오미는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룻에게 보아스가 타작마당에서 술에 취해서 잠이 들면 그가 잠든 곳에 가서 누우라 지시한다. 이는 일종의 보아스를 향한 청혼이다. 즉 나오미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헤세드가 우리에게 찾아올 때 취해야 할 중요한 교훈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종종 전쟁을 앞두고 우리에게 승리를 약속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승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전쟁을 치러야 얻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헤세드 역시, 우리가 수동적으로 ‘주면 받고, 아니면 말고’라는 태도를 가지고는 주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를 마음껏 누릴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내가 해야 할 몫을 남겨 두신다. 그리고 우리에게 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행하라고 하신다.

이것이 운명론자와 기독교인의 차이다. 운명론자는 어차피 내 길은 정해져 있으니 내가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인생은 정해진 대로 살게 된다고 여긴다. 하지만 기독교인은 다르다. 하나님은 우리를 로봇처럼 창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방향을 보여 주시고 우리를 설득하신다. 우리가 그 일을 행하여 만족과 성취감을 누리게 하시고 이전보다 더 성숙한 자로 인도하신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네가 해 낸 거야”라며 칭찬하신다.

지금 룻의 입장에서는 보아스가 자는데 찾아가서 옆에 눕는다는 것은 굉장한 모험이다. 룻의 신분은 보아스의 종이다. 그런데 이 일을 행하는 것은 자칫 보아스로부터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나오미는 룻에게 이를 행할 것을 이른다.

나오미가 왜 이렇게 하였는가. 그것은 오로지 룻을 위해서이다.(1절) 이는 자신을 믿고 따라와 준 룻에게 베풀고 있는 헤세드이다.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자신이 응답의 주체가 되어 행동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어떤 상황 속으로 몰아간다면, 내가 그때 그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주께서 열어 놓으신 길이라는 것이 확신이 든다면 그곳으로 뛰어야 한다.

베드로가 바다를 몇 발자국이라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바다로 뛰었기 때문이다. 배 위에서는 결코 겪을 수 없는 기적은 배에서 뛰어야 누릴 수 있다. 그것을 성경은 믿음이라 하고, 그 믿음을 통해 주께서 나를 위해 예비하신 헤세드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이다.

(미국 버지니아 한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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