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오름 솟은 시원의 아침… 지친 나를 깨우다

‘한우의 고장’ 강원도 횡성에서 신축년 새출발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태기산 정상을 찾은 등산객이 스마트폰 카메라로 상고대로 뒤덮인 나뭇가지와 새해 일출을 담고 있다. 백두대간 위 짙은 먹구름을 뚫고 장엄하게 솟아오르는 해가 코로나19로 힘든 세상에 희망을 전하는 듯하다.

영하 19도. 지난 1일 새벽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과 평창군 봉평면을 잇는 고갯마루인 양구두미재의 기온이다. ‘이 온도 실화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거세지는 않지만 바람까지 불고 있으니 체감온도는 영하 20도를 밑돌 것이다. 양구두미재는 태기산(泰岐山·1261m) 트레킹의 출발점으로 애용된다. 해발 980m로 정상과의 표고차가 281m밖에 되지 않아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어서다.

태기산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청일면과 평창군 봉평면, 홍천군 서석면을 가른다. 횡성군에서 가장 높다. 원래 덕고산(德高山)이었는데 삼한시대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산성을 쌓고 신라에 대항하던 곳이라 해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됐다.

이 산에서 발원하는 갑천(甲川)도 원래는 주천이었으나 태기왕이 박혁거세의 추격을 받아 산으로 들어올 때 더러워진 갑옷을 씻었다는 전설에 따라 개명됐다고 한다. 이 일대에는 태기왕과 관련된 이름이 많다. 산에는 길이 약 1㎞의 태기산성과 태기산성비가 있다. 산성 주변에는 허물어진 성벽과 집터, 샘터가 남아 있다고 한다.

오전 6시. 어두운 밤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있다. 바람에 밀려온 구름이 제법 두껍다. 간간이 눈발도 날린다. 눈길과 추위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서둘러 출발했다. 캄캄한 오름길을 랜턴으로 밝히고 바로 정상으로 향했다. 태기산 정상엔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어 ‘진짜 정상’엔 갈 수 없다. 군부대 철조망 옆 가장 높은 곳에 정상 인증 포인트가 있다. 정상석은 군부대 아래쪽에 세워져 있다.

1시간쯤 뒤 정상 포인트에 도착하자 멀리 동해 쪽 산 위에 구름이 길게 걸려 있다. 그 사이로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멀리 백두대간 능선으로 솟아오르는 아침 해가 검은색을 띤 구름에 붉은빛을 쏘아 올렸다. 그 빛을 받은 구름에는 용오름 모양의 빛기둥이 만들어졌다. 새해 일출은 황홀경 그 이상이었다.

태기산 풍력발전기 옆 눈 쌓인 임도를 걸어가는 등산객.

하얀 상고대를 이불 삼은 나뭇가지는 아침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산을 오를 때 어둠 속에서 보았던 풍력발전기는 바람이 아닌 햇살의 힘으로 돌아가는 듯 보인다. 태기산에는 능선을 따라 들어선 풍력발전기가 태기산 풍경과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이제 하산이다. 군부대 정문에서 임도를 따라 내려오면 정상석을 지나 태기분교 터에 닿는다. 태기분교의 역사를 기록한 안내판이 있다. 1965년 이곳에 74가구 399명의 화전민이 집결했다. 강원도 화전민 정착사업의 하나였다. 주변에 학교가 없어 화전민 자녀들은 글을 배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젊은 처녀 선생님이 보수도 받지 않고 학생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러 나섰다. 처음엔 화전민촌 움막 옆에 칠판을 놓고 한글을 일깨워주고 산수를 가르쳤다. 사연이 보도되면서 독지가들이 학용품 등 필요한 물품을 보냈다. 이어 선생님은 미국의 해외자선단체를 찾아가 110만원의 지원을 받았다. 여기에 강원도가 지원한 170만원을 합쳐 1966년 태기산 중턱 100평의 땅 위에 태기산분교 건물을 세웠다. ‘하늘 아래 첫 학교’ 봉덕국민학교 태기분교가 시작됐다. 1976년 둔내면 덕성초등학교 태기분교로 편입됐다가 1976년 화전민 이주로 폐교했다.

태기분교 터의 쭉쭉 뻗은 나무 사이 눈밭에 설치된 백패커들의 텐트.

2017년 횡성군은 국가 예산을 받아 태기산생태탐방로를 만들고, 태기분교 전시관도 세웠다. 전시관은 태기분교의 역사와 빛바랜 사진, 일기장, 표창장 등으로 채워져 있다. 주변엔 당시 학교 관사와 우물터 등도 남아 있다. 이곳은 이제 백패킹 명소가 됐다. 울창한 나무 아래 눈밭에서 고요한 하룻밤을 보내려는 백패커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태기산 등산이 쉽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누군가에게는 힘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평평한 길을 걸어보자. 횡성호수길이다. 횡성군 갑천면에 2000년 완공된 횡성댐으로 생긴 호수를 따라 걷는다. 하지만 새해특별방역대책에 따라 오는 17일까지 통제가 연장됐다.

댐 건설 당시 부동리, 중금리, 화전리, 구방리, 포동리 등 갑천면 5개 리가 수몰됐다. 중금리에 수몰민들의 고향에 대한 마음을 간직하기 위한 ‘망향의 동산’이 조성돼 있다. 수몰지역의 문화유적과 그들의 삶과 자취를 보관한 자료관과 화성정이 옛 모습 그대로 옮겨져 있다. 호수길은 걷지 못해도 이곳에서 겨울 호수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여행메모
양구두미재~정상 1시간 30분 소요
향미 좋은 횡성한우·쫄깃 안흥찐빵…

공중에서 본 횡성호수길 5구간의 아름다운 풍경.

양구두미재는 영동고속도로 횡성나들목에서 가깝다. 6번 국도를 타고 봉평 방향으로 가다 터널 이전 화동교차로에서 좌회전해 산길을 따라가면 된다. 양구두미재 정상 올레KT태기산중계소 입구에 주차 공간이 있다. 횡성호 망향의 동산은 중앙고속도로 횡성나들목에서 빠지면 편하다.

양구두미재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4㎞ 남짓 임도길은 1시간 30분 정도면 족하다. 아이젠은 필수다. 해가 떠오를 무렵이 좋지만 일몰 풍경도 아름답다. 풍력발전기 아래에는 가지 말아야 한다. 날개에 붙어 있던 얼음덩어리가 떨어질 수 있어 위험하다.

횡성은 한우로 유명하다. 육질이 부드럽고 향미가 뛰어나다. 안흥찐빵도 빼놓을 수 없다. 인공감미료 없이 국내산 팥으로 찐빵 소를 만들고, 밀가루를 막걸리로 발효시켜 빵을 빚어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횡성=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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