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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혼잣말 글쓰기를 넘어서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대체 얼마 만인가. 새해 첫날 신문을 특별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때가. 문학청년 시절, 신춘문예 당선작이 실리는 신문은 새벽의 문이었다. 열고 들어가고 싶은 깨끗한 느낌의 문 앞에 선 당선자는 부러웠고 당선작은 밝은 태양처럼 빛났다. 올해 신춘문예 소식을 기다리는 의미는 남달랐다. 내가 심사회의에 참석해 뽑은 당선자의 면모와 당선 소감이 궁금했다.

수필을 신춘문예의 한 장르로 포함시킨 신문사는 몇백 편의 수필을 심사 원고로 내게 안겨줬다. 시나 소설보다 현장의 삶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 수필을 읽으며 현기증을 느꼈다. 내가 체험하지 못한 삶의 세목이 목덜미를 서늘하게 했으며, 각각 날것에 가까운 목소리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회 공동체 속에서 다양한 의견으로 받아들여졌다. 읽어가며 호흡을 고를 정도로 거침없이 펼쳐지는 글들을 보며 좋은 글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수필은 시나 소설보다 쓰기 쉽다는 인식이 글쓰기 세계에 있는 듯하다. ‘붓 가는 대로’ 쓰는 장르라고 생각하니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옮겨 쓰면 된다는 세간의 오해 말이다. 어떤 원고는 아주 독특한 체험과 중요한 메시지를 갖고 있는데도 혼잣말처럼 두서없이 써 내려가 그 체험이 난삽한 일화에 그치고 말았다. 또 다른 원고는 세상살이에 대해 누구나 알 만한 평이한 어조의 감상을 풀어내 문학의 길을 잃어버린 듯 보였다.

메시지와 이야기는 문장으로 전달되고 문체로 독자들과 감응한다. 문장 만드는 낱말을 고르고 글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은 글쓰기 메모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보통이다. 글을 써 내려가는 과정에서 메모가 종종 덧붙여진다. 그 덧붙인 자국이 읽는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건 반복해 다시 읽고 자신의 눈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덕분일 것이다. 글쓰기를 오랫동안 가르쳤던 작가 이슬아는 그 경험을 담은 책 ‘부지런한 사랑’의 머리말에서 “글쓰기는 게으르고 이기적인 우리를 결코 가만히 두지 않았다. 다른 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고, 스스로에게 갇히지 말자고 글쓰기는 설득했다”고 적시했다. 글쓰기의 가장 큰 미덕은 혼잣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참여해 뽑은 당선자의 소감을 읽었다. “친구도 별로 안 만나고 내성적인 줄 알았던 제가 수필 덕분에 외향적 인간이라는 걸 깨닫게 됐죠.” 글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발견했다는 첫마디에 원고를 읽으며 느낀 감각적 신선함이 다시 한번 전해졌다. “개인적인 글을 사적이지 않게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라는 말에는 당선자가 글쓰기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는 믿음이 생겼다. 개인적인 글을 사적으로 쓰는 것은 일기다. 독자를 떠올린다면 ‘사적인 글쓰기’는 달라져야 한다.

‘부지런한 사랑’에는 일기 쓰기와 글쓰기 훈련에 대한 대목도 있다. 보여줄 수 있는 일기를 쓴 날들이 쌓이면 언젠가는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일기를 쓰게 되고, 보여줄 수 없는 일기를 쓴 날들이 쌓이고 또 쌓이면 다시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완성하게 된다는 경험담이다.

어린 시절 숙제였던 일기를 검사한 선생님의 다정한 코멘트를 받고 최초로 독자를 인식한 작가는 조금씩 다른 하루의 디테일을 글쓰기로 구성하며 일기를 썼다. 오로지 코멘트를 받기 위해서. 그러다가 도저히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날엔 나만이 보는 일기장에 따로 글을 썼다. 일기 쓰기를 통해 어느 순간 불특정 다수가 읽어도 설득이 되는 문장을 향해 노를 저어가는 자신을 깨달았다고 한다. 솔직함이 글의 완성도를 보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작가는 일기를 딛고 멋진 점프를 하기 위해 애쓴 결과가 지금의 글이라고 고백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글 쓸 만한 이야기를 품고 살아간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글을 쓰지는 않는다. 그 이야기는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더욱 확연하고 세밀하게 보인다. 글을 쓰려 했다면 잘 보이게 된 그 이야기를 읽는 사람에게 어떻게 전달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읽는 사람의 마음에 와닿을 때 그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되니까.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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