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바이블시론

[바이블시론] 죽으면 죽으리이다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변호사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6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의 징계처분을 재가했다. 윤 총장이 징계가 부당하다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자 여권은 검찰총장의 법적 대응에 대해 “징계를 재가한 대통령과의 전쟁”이라고 규정하고,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에게 항명했다면서 ‘대통령 지키기’ 검찰 개혁의 칼을 또다시 꺼냈다. 같은 달 24일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윤 총장은 업무에 복귀했다. 여권에선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 권력을 정지시킨 사법 쿠데타”라고 규정했고, 그 지지자들은 일개 판사가 대통령 결정을 뒤집었다면서 ‘법원 길들이기’ 사법 개혁을 선동하고 있다.

헌법 제7조 제1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모든 공무원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다. 대통령 권한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며, 국민에 대해 정치적·법적 책임을 진다는 의미다. 검찰총장도 법관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아닌 국민으로부터 그 권한을 위임받은 것이기에 국민에 대해 책임질 따름이다. 이어 제2항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돼 있다. 이른바 직업공무원 제도를 헌법 제도로 보장하고 있다. 직업공무원 제도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 의무를 본질적 특성으로 한다. 직업공무원은 특정인이나 특정 정당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과 국가에 충실해야 한다.

대통령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절대군주가 아니다. 대통령이 국민에 의해 선출됐다 해도 직무 집행에 있어 헌법과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탄핵될 수 있다(헌법 제65조).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보다 앞설 수 없다는 의미다.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임명하는 공무원이다(헌법 제89조). 검찰총장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다 해도 대통령의 지시나 처분을 헌법과 법률보다 앞세워선 안 된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헌법 제103조). 정치권력이나 여론으로부터 독립해 재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총장은 법률에 의해 2년 임기를 보장받고, 법관은 헌법에 의해 신분이 보장된다(헌법 제106조). 검찰총장과 법관은 대통령의 말이나 생각이 아니라 마땅히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야 한다. 대통령이 그만두라고 한다 해서 그 직을 그만둬서도 안 된다. 이는 법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한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다. 검찰총장과 법관의 개인적 목적이나 당파적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하고 정의와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다.

검찰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월성 원전 1호기 평가조작 사건, 조국 전 장관 가족 입시부정 사건 등을 수사하지 않았다면 윤 총장에 대한 징계는 없었을 것이다. 그 징계는 이유, 절차, 내용이 정략적이고 법치의 근간을 위협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총장의 징계 불복과 법원의 인용은 법과 양심에 따른 결정이지 대통령과의 전쟁이나 쿠데타가 아니다.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세우며 법치를 지키려는 소명의 실천일 뿐이다.

페르시아 왕비 에스더는 유대 민족의 이익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죽으면 죽으리이다”면서 왕 앞에 나아간다(에스더 4장 16절). 모든 공직자는 자유, 정의, 진실을 위해 압박과 위협에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과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법과 국가를 지켜내야 한다. 그런 사람만이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참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선비는 뜻이 크고 굳세지 않으면 안 되니 임무는 막중하고 길은 멀기 때문이다.” 논어 태백편(泰伯篇)에 나오는 말이다.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변호사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