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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입양은 죄가 없습니다

김현길 문화스포츠레저부 차장


“아동학대가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전국입양가족연대의 지난 5일 성명을 접한 후 몇 해 전 취재가 떠올랐다. 취재는 입양 가정에 대한 지방자치단체 방문조사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조사는 양육수당을 받는 가정을 찾아 양육 여부 등을 확인하는 것인데, 문제는 비밀 입양이 많은 현실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데 있었다. 당사자인 아이는 물론이고 주위에 입양 사실이 원치 않게 드러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양부모에겐 컸다. 공개 입양 가정에서도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 때까지 매년 조사받는 것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았다. 중앙부처에선 비밀 보장에 각별히 유의할 것을 지시했지만, 현장에 그 뜻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은 듯했다. 문제가 잇따르자 관련 지침은 없는 일이 됐다.

방문조사가 이뤄진 배경엔 ‘정인이 학대 사건’처럼 입양 가정에서 발생한 불행한 사건이 있었다. 언론에서 해당 사건이 알려지고 국민적 공분이 일어난 데 대해 정부가 마련한 대책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당시 취재했던 입양 가정들은 이 같은 흐름에 어느 정도 익숙한 듯 보였다. “우리를 왜 부모로 인정 안 해주시는 거냐”는 어느 부모의 한탄에선 그간의 서러움과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입양한 딸을 둔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입양 가족들의 가슴은 철렁철렁한다”는 말은 그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이 입양 가정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라는 점에서 입양 가정에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어디에 더 방점을 찍을 것인가는 비슷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데 있어 더없이 중요하다. 확인된 사실을 보면 정인이가 숨지기 전에 세 번의 신고와 그 사이사이 담당 기관들의 대응이 있었다. 이를 감안하면 그간 아동학대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비해온 사회 시스템이 어느 정도 기능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사건을 인지한 이후 경찰을 비롯한 기관의 대응과 수습에 있었다고 보는 게 맞다. 비판과 해결의 초점 역시 그것에 맞추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다.

언젠가부터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된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익숙해진 풍경이 있다. 피해자 이름을 딴 법이 기다렸다는 듯 여러 의원실에서 경쟁적으로 발의되고, 서둘러 처리되는 것이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물론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을 때 동력을 얻고, 대책이 마련되는 것은 긍정적이다. 다만 설익은 제도나 법은 그 속도에 비해 놓치는 것도 많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당장 제도나 법의 적용을 받는 사람과 앞으로 받게 될 더 많은 사람을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입양단체 성명서의 다음 문장은 되새길 필요가 있다. “국민적 공분을 받고 있는 단 하나의 사건 속에 모든 답이 들어 있는 것처럼 대처해서는 결코 살아있는 정인이를 지켜내지 못합니다. 공분을 잠재우기 위한 대책은 진정한 대책일 수 없습니다. 입양에 죄를 묻는다고 정인이가 살아오지 못합니다. 입양은 죄가 없습니다.” 이 성명은 문재인 대통령이 입양 아동 사후 관리, 입양 절차 전반 관리·감독 및 지원 강화를 언급한 다음 날 나왔다.

이번 일을 통해 입양 절차 등에 대한 문제가 드러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보완해야 할 것이다. 다만 그 영향에 대한 세심한 고려 역시 뒤따랐으면 한다. 덧붙여 이번 일로 입양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커지고, 입양 절차에 들어갔거나 고려하는 가정이 영향을 받는 일도 없었으면 한다. 어찌 보면 그것이 비슷한 비극 이후 우리 사회가 맞닥뜨리는 가장 부정적인 마무리가 될 수 있다.

김현길 문화스포츠레저부 차장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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