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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 이번에는 다르다는 말

양민철 정치부 기자


투자 광풍의 시대에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자산이 있다. 바로 삼성전자와 비트코인이다. 국민주 삼성전자는 2년 전 ‘삼만전자’라는 오명을 썼다. 최고점인 5만3000원까지 치솟았던 주가가 순식간에 3만원대로 추락하자 고점에 물린 개미들은 비명을 질렀다. 투자자들은 자조를 섞어 삼성전자를 삼만전자라고 불렀다. 불과 2년 뒤 삼성전자는 ‘십만전자’를 눈앞에 두고 있다. 삼만전자 시절 과감하게 매수 버튼을 누른 사람은 현자가 됐다.

바다이야기와 같은 도박에 비유됐던 비트코인도 환골탈태했다. 거품 논란이 극에 달한 2017년 말보다 가격은 배 가까이 치솟았다. 세간의 시선도 달라졌다. 가상화폐는 가치가 없다고 했던 JP모건, 골드만삭스는 이제 매점매석에 나섰다. 각국 중앙은행과 정보기술(IT) 기업들은 디지털 코인 시대에 팔을 걷어붙였다. 한국 정부도 거래 금지에서 과세로 방향키를 돌린 상태다. 거품과 투기의 상징이던 시절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어떤 자산이든 찬밥 취급을 받을 때는 비관론만 가득하다. 상승기가 끝나고 내려갈 일만 남은 것 같다. 반대로 가격이 오를 땐 낙관론이 힘을 얻는다. 하락기는 까맣게 잊은 채 계속 오를 것이란 외침에 환호한다. 그러나 시장은 언제나 상승과 하락을 반복해 왔다. 월가의 전설적 투자자 존 템플턴은 “영어 문장 중에 가장 수업료가 비싼 문장이 있다. 바로 ‘이번에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는 말”이라고 했다. 영원한 상승도 하락도 없다는 것이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국회로 눈을 돌려도 격세지감은 이어진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은 2015년 8월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는 제목의 책을 냈다. 지금의 ‘슈퍼 여당’ 민주당이 2012년 대선과 총선에서 판판이 깨지던 시기였다. 보수 장기집권 시대가 열렸다는 분석이 득세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꺼낸 ‘전직 대통령 사면론’에 “집권하고 있다고 해서 장난쳐선 안 된다”며 “전쟁에서 항복한 장수에 대해서도 기본적 예우는 있다”고 발끈했다. 2016년 민주당 살리기에 투입됐던 김종인 전 대표는 현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다. 승자와 패자가 뒤바뀐 여야의 ‘웃픈’ 풍경이다. 아무리 정치가 살아있는 생물이라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6년 전으로 돌아가 이런 미래를 얘기한다면 대다수는 이상하게 쳐다볼 것이다.

영원한 권력을 손에 쥔 것처럼 전 세계를 쥐락펴락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 계정이 영구 정지된 건 ‘상승과 하락’의 극단적 사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종과 이념, 빈부 격차와 같은 미국 사회의 갈등 요소를 자극해 대통령 자리까지 올랐다. 하지만 결국 광적인 지지자들이 벌인 ‘미국 연방 의사당 유혈 사태’로 인해 자신의 입이 막히는 꼴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소셜미디어로 예전처럼 24시간 시시콜콜한 발언을 쏟아내더라도 그 힘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부동산 개발 등 다양한 사업으로 투자 감각을 키웠던 그라면 자신의 권세가 하락세로 접어들었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증권가에선 “주말에도 주식을 사고 싶다”는 고객이 늘 때를 버블의 징후로 본다. 상승에 취해 계속 오를 것이란 확신에 빠져 있을 때 조정 또는 하락장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수많은 투자 현인들이 제1 원칙으로 ‘겸손’을 꼽은 이유다. 21대 총선 압승 후 입법 독주와 함께 ‘윤석열 사태’의 강공 드라이브를 이어오던 여당도 최근 심상치 않은 4·7 재보선 여론조사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지난 총선에서 획득한 180석의 힘에 도취돼 이기지 못하던 시절을 잊은 결과물일지 모른다. 상승을 굳게 믿은 사람일수록 하락장에서 크게 무너진다. 고수익에 취해 여기저기서 “이번에는 다르다”는 말이 나올 때 가장 위험하다는 것, 격세지감 시대에 투자자만 새겨야 할 격언은 아니다.

양민철 정치부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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