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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자라나는 행운

이원하 시인


책임감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모르던 시절에 ‘마리모’라는 식물을 분양받았다. 마리모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식물로 유명했다. 키우는 방법은 간단했다. 이끼처럼 생긴 작은 동그라미의 마리모를 물과 함께 유리병에 넣어두고 일주일에 한 번씩 깨끗한 물로 갈아주기만 하면 됐다. 마리모의 건강 상태가 나빠지면 갈색으로 변하는데 그럴 때는 소금을 소량 넣어주면 다시 초록빛을 띠며 건강해졌다. 늘 바닥에 가라앉은 채 생활하는 마리모가 물 위로 뜨는 순간이 있는데 이건 마리모의 기분이 좋다는 신호였다. 흔치 않은 이 상황을 포착하게 되면 행운이 온다고 전해졌다. 이 매력적인 식물을 사랑했다. 학교에 갈 때면 서랍 안에 깊숙이 숨겨두고 갔다. 그게 마리모를 지켜주는 행위라고 믿었던 것 같다.

하루는 깜빡하고 마리모를 책상 위에 꺼내두고 등교했다. 그리고 그날 마리모는 죽어버렸다.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일을 도와주던 이모가 가족이 마시다 남긴 물이라고 생각해 하수구에 부어버린 거였다. 마리모가 워낙 작아 눈에 안 띄니 그럴 만했다. 내 탓이었다. 까만 하수구 구멍을 바라보며 한참을 울었다. 지켜주지 못한 사실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중학생이던 그때 그 어린 마음에 책임감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깨달았다. 그날의 아픔 때문에 나는 아직까지도 생명을 집안으로 들이지 못한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좋아해 키우고 싶지만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분양받지 않을 것이다.

눈사람조차도 쉽게 만들지 못한다. 폭설이 쏟아진 올해 겨울도 눈사람을 만들지 못했다. 길거리에서 지내게 될 눈사람의 짧은 생을 내가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책임질 수 없다면 차라리 나처럼 미련해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집안에 들인 식물도, 동물도, 어린아이도 내가 뒤돌아서면 혼자서 살아남기 힘든 존재들이다. 단순한 욕심 때문에, 과시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작고 연약한 생명에게 슬픔을 주면 안 된다.

이원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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