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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대선 불복’이라는 쿠데타

김남중 국제부장


지난주 미국 의사당 폭동에 가담한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 게 선거 결과가 조작됐다는 믿음이었는지 선거 패배에 대한 절망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치열한 선거가 끝난 후에 선거가 조작됐다는 주장이 나오는 건 이례적인 경우는 아니다. 국내에서도 지난 대선이 부정 선거였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지금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엔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개표기가 조작됐다는 얘기가 한참 이어졌다.

선거에 몰입했던 사람들이 패배를 받아들이는 건 힘든 일이다. 그때 누군가 부정 선거를 주장한다면 쉽게 거기에 쏠릴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이루면 믿음은 더욱 강화된다.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시위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사당으로 쳐들어가 폭력을 행사하며 대통령 당선인 승인 과정을 막는 건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자유의 한계를 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미국에서 벌어졌다. 폭동 과정에서 시위대 4명과 경찰 1명이 사망했다. 선거가 끝나면 나오곤 했던 부정 선거 얘기가 루머에 그치지 않고 쿠데타 수준의 의사당 난입으로 결행된 이유는 무엇일까. 결정적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인물에 있다. 어느 나라나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음모론이 섞여 있게 마련이고, 극단적 이념에 사로잡힌 사람들과 단체들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여기에 가세하는 건 민주주의 국가에선 보기 어려웠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는 예외적이었다. 그는 앞장서서 표를 도둑맞았다고 주장했고, 표를 되찾으라고 지지자들에게 촉구했다. 이번 사태는 미국 대통령이 선동한 폭동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

미국의 유명 작가 리베카 솔닛은 가디언 칼럼에서 “외부의 폭도는 내부의 정치인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면서 트럼프와 공화당 지도자들에 의해 의사당 폭동이 조장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치 맥코넬(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과 다른 공화당 지도자들이 지난해 11월 초에 정상적으로 당선자를 인정했다면, 정부 내부에서 정당한 선거에 대한 도전이 없었다면 폭도들은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의사당 폭동 사태의 보다 중대한 문제는 선거 결과에 대한 공격이었다는 점에 있다. 표로 결정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 결과가 위협을 당하는 것보다 더 큰 위기는 없을 것이다. 선거 결과를 실제 뒤집으려 했다는 점에서 트럼프와 지지자들의 행위는 쿠데타였고,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였다. 선거 불복의 선례를 만든 것은 트럼프가 재임 기간 저지른 수많은 악행 중에서도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의 선거 불복은 광범위하고 집요하고 대담하게 실행됐다. 그렇지만 선거 결과는 지켜졌다. 조 바이든 당선인은 오는 20일 대통령에 취임한다. 표를 지켜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선거 부정 소송에 대한 각급 판사들의 일관된 기각 판결, 재개표·검표 요구를 받은 주정부들의 거듭된 승인, 선거 결과를 정확하게 반영한 선거인단 투표와 상·하원 합동회의 인증까지 표는 훼손되지 않았다.

또 많은 정치인이 대통령의 압력에 맞섰다. 조지아주 국무장관은 대통령이 개표 결과를 뒤집으라고 압력성 전화를 했다고 폭로했고, 한국계 박병진 조지아주 북부지역 연방검사장은 부정 선거 수사에 협조하지 않다가 사임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당선자 승인을 늦추거나 거부하라는 트럼프의 요구를 거절했다. 의사당 폭동 사태는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여준다. 동시에 대통령이 주도한 유례 없는 대선 불복 쿠데타를 제압한 미국 민주주의의 힘을 확인시켜주기도 한다.

김남중 국제부장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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