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형석 (22) 강연 잘하는 선배 부러워 ‘제게도 연설 능력을…’ 기도

중2 때 드린 기도 실천의 원동력 된 듯… 주일학교서 학생 가르치며 자신감 키워

김형석 교수는 10대 시절부터 지금껏 대중에게 강연과 설교로 ‘선하고 아름다운 삶’에 관해 연설해왔다. 김 교수(왼쪽 세 번째)와 안병욱 숭실대 교수(왼쪽 두 번째)가 울산시민대학에서 강연한 뒤 단체 사진을 찍었다. 양구인문학박물관 제공

나는 활동적이고 사교적이기보다 내성적이고 사색적이다. 100세가 넘은 지금도 성격에는 변함이 없다. 이런 성격을 갖고 태어난 내가 지금껏 대중 앞에 서서 강연과 설교를 해온 건 놀랄만한 일이다.

이런 생애를 보내게 된 이유가 뭘까 스스로 물어본 일이 있다. 한 가지 떠오르는 일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드린 기도다. 교회 성경학교 강연에 나서는 선배들을 부러워하며 ‘잘 가르치고 연설할 수 있는 능력을 제게도 베풀어 달라’고 주님께 기도했다. 기도는 실천의 원동력이 되는 걸까. 이후 시골교회에서 주일학교 학생을 가르치며 연설 능력과 자신감을 키웠다. 훗날 여러 강연과 연설을 하게 된 힘도 이렇게 생긴 것 같다. 감사드린다.

처음엔 강의와 강연, 설교는 구별되는 것이라 여겼다. 강의는 교재 준비를, 강연은 알찬 내용을 마련하면 자신 있었지만, 설교는 그렇지 않았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다. 청중이 나를 기억하지 말고 주님의 말씀에 집중하기를 기대한다. 이처럼 막중한 책임이 맡겨지는 설교를 마치고 집회에서 돌아올 때의 행복감은 경험한 사람만이 아는 축복이다.

30여년 전부터는 강연할 때도 설교 때와 마찬가지의 심정으로 임하고 있다. 강연 역시 주님께서 내게 맡겨 주신 일이다. 기독교인보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사람을 더 걱정하는 주님의 마음을 몰랐던 것이다. 신앙인으로서의 나와 세상사람으로서의 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하나의 인격과 삶인 것이다.

1965년부터 85년까지의 일기를 정리하며 그간 설교한 횟수를 세어보니 2200회 정도가 됐다. 일주일에 평균 2회 정도 신앙 강연을 한 셈이다. 이전 10년에는 더 많은 설교를 했을 것이다. 지금도 교회 안팎에서 설교한다. 목회자나 신학자가 아닌 나로서는 은총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몇 차례 집회가 있다. 57년 상동감리교회, 61년 동대문감리교회에서 열린 청장년을 위한 신앙집회다. 두 집회 모두 교회 밖 대학생과 청년으로 예배당이 초만원이 됐다. 6·25전쟁 후 공허감에 빠진 청년들이 적잖았던 시기다. 63년 원주YMCA 주관으로 강원도 원주에서 연 옥외 집회에 우산을 쓰고 삼삼오오 모여있던 수많은 청년도 기억한다. 누가 해낸 일이 아니었다. 주님이 원하셨기에 우리가 심부름했을 뿐이다.

60년대 후반부터는 미주의 한인교회 집회 기회가 늘었다. 특히 78년 뉴욕 한인교회에서 열린 집회를 잊을 수 없다. 평소 한인교회 성도보다 3~4배 더 참석했는데, 교회 밖 전문직 종사자들이 찾아와 준 덕이었다. 85년 LA 동양선교교회에선 집회 후 “김형석 교수에게 전해달라”며 미화 1만 달러를 두 차례 전달한 초로의 신사도 있었다. 여기에 교회가 3000달러를 더 후원해 나는 연세대에 2만3000달러를 장학금으로 기부할 수 있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부족한 평신도 한 사람이 주님의 부르심에 동참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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