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스포츠

연예·스포츠 > 스포츠

“따라잡아야할 아빠? 본받아야할 선수예요”

[가자! 도쿄로] ③ ‘여홍철 딸’ 한국여자체조의 간판 여서정

여서정이 지난해 11월 열린 전국종별체조선수권대회에서 아크로바틱한 자세로 평균대 연기를 펼치고 있다. 대한체조협회 제공

기계체조 대표팀 선수 여서정(18)은 고등학교를 막 졸업했다. 여름에 열릴 도쿄올림픽에는 ‘어른’의 신분으로 출전한다. 국민일보와 통화한 9일은 모교 경기체고 졸업식을 비대면으로 치른 다음날이었다. 그는 현재 진천선수촌에서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여서정을 수식해온 표현은 ‘여홍철의 딸’이다. 아버지 여홍철은 한국 기계체조 선수로는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유명하다. 위대한 선수의 자녀들이 겪는 부담은 여서정도 예외가 아니었지만, 그는 이를 극복하고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여자 도마 부문에서는 한국 최초, 한국 여자 체조에서는 32년만의 금메달을 따내며 자신만의 역사를 썼다. 그를 향한 기대는 이제 ‘여홍철의 딸’보다, ‘한국 간판 체조선수 여서정’을 향한 기대다.

다시 쌓아올리기

지난해 진천선수촌에서 퇴촌한 여서정이 사설 컨디셔닝센터에서 개인 훈련을 하는 모습. 올댓스포츠 제공

지난해는 여서정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준비해오던 올림픽이 취소된 뒤 지난해 3월 그는 선수촌 밖으로 나와야 했다. 한달 동안은 체조를 할 수 없었고, 이후 학교에서 훈련을 재개했지만 선수촌의 환경에 비하면 한참 모자랐다. 올림픽이 열릴지도 확신할 수 없어 개인적인 동기부여도 어려웠다. 체육계 뿐 아니라 국민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국가대표 선수지만, 동시에 아직 10대에 불과하기도 한 그에게는 가혹한 시간이었다.

여서정은 “지금은 몸을 ‘잡는’ 시기”라고 표현했다. 그간 훈련을 못해서 풀린 근육과 기본기를 다시 낮은 단계부터 쌓아올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선수촌에 처음 복귀했을 때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 부족한 게 많다”면서 “할줄 아는 기술이 안되면 답답하고 속상하다. 올림픽까지 시간이 많지 않아 마음이 급하다”고 토로했다. 이정식 대표팀 감독은 “여자 선수들은 성장기가 겹쳐 신체적 변화가 오는데 서정이도 코로나19로 훈련을 못하는 동안 그 영향을 받았다”면서 “정신력만 가지고 유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만한 환경과 관리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서정은 가장 최근에 치른 국제대회인 2019년 세계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실수로 눈앞까지 다가온 메달을 놓친 기억이 있다. 선수 생활을 하며 줄곧 오르막길만 걸어온 그에게 닥친 첫 시련이었다. 선수로서 이번 올림픽은 당시 아쉬움을 만회할 기회이기도 하다.

‘경쟁 상대’서 ‘본받을 선수’된 아빠

여서정의 아버지는 한국 최초의 체조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여홍철, 어머니는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단체전 동메달리스트 김채은이다. 여서정은 “어릴 때는 ‘쟤가 여홍철 딸이야?’하고 기대하는 시선이 정말 힘들었다. 못하면 부모님 얼굴에 먹칠하는 것 같았다”면서 “잘 해도 사람들이 ‘쟤는 여홍철 딸이라서 잘 해’라고 말하는 게 너무 싫었다. 힘들게 노력한 걸 깎아내리는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부담스러운 기대와 갈수록 힘든 운동 탓에 초등학교 6학년쯤에는 체조를 그만두려 한 적도 있다. 여서정은 “친구들이 놀러가자고 할 때 혼자 체조장을 가야하는 게 싫었다. 그만두겠다고 하니 부모님께서 생각해보라고 일주일 시간을 주셨다”면서 “사흘 정도 지나니 몸이 근질근질하고 체조가 하고 싶었다. 아마 그럴 걸 짐작하신 것 같다”면서 웃었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체조는 힘들지만, 많은 기술을 하나씩 해나갈 때의 성취감이 참 좋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따라잡아야 할 대상이었던 아버지의 이름은 여서정에게 이제 좀 다른 의미다. 그는 “전에는 아빠보다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본받을 점이 많았던 선수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시안게임 메달을 땄을 때 아버지가 여홍철이다 보니 더 많이 뉴스가 됐던 것 같다”면서 “그렇게라도 체조가 더 사람들 사이에 인기가 많고 유명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어른스럽게 말했다.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여서정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은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 체조 선수로서 성공하고 국가대표로서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것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힘들 때 자신의 옆을 지켜준 가족, 매일 같이 전화로 격려해준 친한 언니 등 고마운 사람들이 그에게는 중요하다. 그는 “힘들었던 시간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의지를 정말 많이 했다”면서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올림픽에서 꼭 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선수촌을 나온 뒤 올림픽에 대한 동기 부여가 없어지면서 그만두려고 했었다”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기까지 부모님이 나 때문에 많이 힘드셨다. 평소에는 오글거려서 못하지만 부모님, 가족에게 항상 믿어줘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쑥스럽게 털어놓았다.

올림픽이 끝난 뒤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다. 다만 대회가 끝난 뒤 꼭 하고 싶은 건 있다. 아이돌그룹 워너원 멤버 박지훈의 콘서트에 가는 것이다. 여서정은 “항상 운동이 먼저다보니 그동안 숙소에서 사진이나 동영상으로만 봤지 콘서트에 갈 수 없었다”면서 “올림픽이 끝나면 무조건 가보고 싶다”며 웃었다. 그는 올림픽이 끝나고 난 뒤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어떤 결과가 나오든 연연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잘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가자! 도쿄로]
▶①18세 ‘수영 바보’… 수영 안 하면 하루가 너무 길어요
▶②“톰 이기는 제리가 나, 장신 상대 골탕 먹이다 메칩니다”
▶④달리기만 했던 ‘코로나 공백기’… 메달이 당찬 목표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