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조연이 없다… 코로나 전쟁 1년, 곳곳에 숨은 어벤져스

[코로나 1년, 우리가 들어야 할 목소리] ② 지금도 사투 중인 사람들

세계 각국에 코로나19 방역 비상이 걸린 가운데 지난해 말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입국장에서 관계자들이 벤치에 소독액을 뿌리고 닦으며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것은 의사와 간호사만이 아니다. 코로나 환자를 돌보기 위해 병원의 수많은 인력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고 있다. 음지에서 이름 없이 고군분투하는 코로나 전선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오염 장소’ 매일 닦아내는 사람들

서울시 서북병원 청소노동자 김모씨는 얼마 전 ‘오염물질을 치워 달라’고 말하는 한 퇴원 환자의 말에 서러움을 느꼈다. 김씨는 “퇴원 환자가 나가면서 캐리어를 두고 가길래 ‘다 소독했으니 가져가셔도 된다’고 했더니 ‘오염된 물건인데 그걸 내가 왜 가져가요’라고 하더라”며 “그때 내가 오염된 물건을 치우는 사람이라는 게 실감났다”고 했다.

김씨를 비롯한 이 병원 청소노동자들의 주 업무는 격리하다시피 생활해 온 환자들이 쏟아낸 ‘오염물건’(쓰레기)를 처리하는 것이다. 병실 환자들이 쓰는 4~5㎏ 분량의 쓰레기는 많게는 하루 400개씩 쏟아진다. 이틀에 한 번 수거하는 방호복도 4~5㎏ 무게의 박스로 50개씩 나온다. 2주간 격리치료를 위해 퇴원 환자가 가져온 생필품들도 모두 이들의 손에 맡겨진다.

김씨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서 김 서린 고글을 쓰고 병실 쓰레기를 운반하다 넘어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며 “양옆에 쓰레기통을 들고 걷다 보니 난간을 잡을 수 없어 엉금엉금 감으로만 계단을 오르내리며 쓰레기를 옮긴다”고 설명했다.

스트레스가 쌓인 환자들이 병실 바닥에 집기를 던지거나 일부러 커피를 부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청소 호출’이 떨어지면 청소노동자들은 급히 방호복을 입고 병실에 투입돼 수시로 쓰레기를 치운다. 많은 날은 하루에 여덟 번까지 방호복을 입고 벗는다고 한다.

김씨는 본인 일에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코로나 전담병원에서 청소일을 한다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김씨는 “처음에는 청소노동자로 일한다는 게 부끄러워 알리기 싫은 마음이었는데, 코로나 전담병원에서 일하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제는 사람들과 술 한 잔도 못 나눌까봐 이야기를 안 한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지만, 주변에 알릴 생각은 앞으로도 없다”고 했다.

2주 만에 쌓아올린 ‘코로나 전담병원’
이송요원들이 서울시 서남병원에서 코로나19 환자를 앰뷸런스에서 병실로 옮기는 모습. 서남병원 제공

서울의료원 시설관리팀은 지난해 2월 ‘2주 만에 일반 병원을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바꾸라’는 미션을 받았다. 갑작스레 코로나19 환자를 받기 위한 병원의 전면적 개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당시 감염병 전담병원을 운영하기 위한 시설 기준도 없고 감염 위험 때문에 외부에 용역을 맡길 수도 없어 팀원 11명은 매일 밤낮으로 회의를 거듭했다.

시설관리팀 김명윤 차장은 “초창기에는 ‘공기 중에도 오염이 된다’는 말이 있어 코로나 환자가 머무는 곳과 다른 곳의 공기가 섞이지 않게 병원 전체의 공조기 운영 방식까지 바꿔야 했다”고 말했다. 김 차장을 비롯한 팀원들은 병원 전체의 동선부터 재설계를 시작했다. 오염구역·청결구역으로 이동 경로를 분리하고 층수를 나누기 위해 엘리베이터 시스템도 변경했다. 음압병실에 설치할 이동형 음압기 100여대를 구하기 위해 수십 곳에 전화를 걸고 발로 뛰어야 했다.

코로나 병원으로의 개조 이후 팀원들은 시설 유지 걱정에 1년 내내 마음을 졸이고 있다. 시설 고장으로 병원이 아비규환되는 악몽도 자주 꾼다. 아침에 모여 ‘어젯밤 공조기가 고장나 음압 유지가 안돼 환자가 전부 뛰어나오고 대피하는 광경의 꿈을 꿨다’ ‘승강기가 고장나 움직이지도 못하는 꿈을 꿨는데 아침까지 진정이 안돼 한숨도 못 자고 출근했다’는 이야기를 팀원끼리 공유하곤 한다.

하지만 이들은 늘 의료진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김 차장은 “일요일 야간에 나와 일하던 어느 날 팀원 한 명이 ‘여기 아무도 없는데, 우리 일을 누가 알까’라는 말을 건넨 적이 있다”며 “그래도 ‘내가 알고 네가 알잖아’라는 다른 팀원 말에 힘을 내 설치를 완료했다”고 회상했다. 김 차장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누구도 주연, 조연이 아니고 내 담당 업무에서는 내가 주연이라고 생각한다”며 “모든 의료기관에 수많은 인력이 있다는 것을 가끔 사람들이 떠올려 봐줬으면 좋겠다”며 웃어 보였다.

코로나19 종식까지 쉴 수 없는 사람들

조성임 서울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수석기사와 팀원들은 지난해 코로나 사태 발생 후 매일 300~400개의 검체 검사를 하고 있다. 감염성 있는 물질을 직접 다루는 이들은 누구보다 조심스럽게 일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에너지 소비가 심각하다.

조 기사는 “지난해 1월 29일부터 주말과 공휴일 없이 아침부터 새벽 2시까지 팀원들이 돌아가며 코로나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위음성·양성이 한 번 나오면 그 여파가 너무 크기 때문에 늘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환자 이송을 돕는 직원들의 업무도 코로나19 종식과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서울시 서북병원의 임경호 주무관은 “새벽에도 환자가 발생해 이송해야 한다는 호출을 받으면 집에서 헐레벌떡 뛰어나온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19 환자가 계속 있는 이상 밤잠을 설치는 일은 계속될 것 같다”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강보현 송경모 기자 bobo@kmib.co.kr

[코로나 1년, 우리가 들어야 할 목소리]
▶①-1탈모·트라우마·퇴사 ‘완치’ 뒤에 무너진 삶
▶①-2대구 신천지 탈퇴자 “존재 자체가 잘못된 잉여인간 같았다”
▶①-3“오죽하면 쌀 동냥까지…” 코로나 생계 절벽에 선 취약계층
▶②-1의료진 사명감에만 기댄 K방역… “당직 날 환자 200명 보기도”
▶②-3‘K방역’ 과신하다 3차 대유행… 땜질식 대응에 신뢰 ‘추락’
▶③-1온몸 멍든 채 발견된 5살 승진이… 복지 사각지대의 ‘민낯’
▶③-2종일 혼자 폰보며 뒹굴뒹굴… 일상이 위험한 저소득층 아이들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