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 사명감에만 기댄 K방역… “당직 날 환자 200명 보기도”

[코로나 1년, 우리가 들어야 할 목소리] ② 지금도 사투 중인 사람들

코로나19 전담병원 소속 의료진이 12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담병원 정원 확대와 지원·보상 방안 마련을 호소하며 힘든 표정을 짓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은 전담병원 인력 소진·이탈 호소 및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김지훈 기자

칠곡경북대학교병원 코로나19 중환자 병동에서 근무하는 이은주 간호사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코로나 환자를 위해 매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2월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 자원해 파견근무를 나갔던 이 간호사는 복귀하자마자 경북대병원에 새로 마련된 코로나19 음압중환자실에 배치됐다. 코로나19와 뗄 수 없는 운명이겠거니 하며 받아들였지만, 그때만 해도 이렇게 싸움이 길어질지 몰랐다.

의료 현장에서 코로나19를 마주한 지 어느새 1년이 다 돼 가지만 이 간호사는 ‘레벨D 방호복’을 입을 때마다 어김없이 심장이 벌렁거리고 숨이 찬다. 과민대장증후군이 찾아와 복통을 호소하는 날도 적지 않다. 이 간호사는 “방호복을 입어보기 전엔 내 종아리에서 그렇게 땀이 많이 나는지 몰랐다”며 “찜질방에서 뜀뛰기를 몇 시간 하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방호복을 입는 오염 존 안과 입지 않는 청결 존에서 흐르는 시간이 다르게 느껴져 동료들은 영화 ‘인터스텔라’ 같다는 비유를 들기도 한다.

이 간호사는 “환자가 세상을 떠날 때가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일반 환자와 달리 코로나19 감염자의 시신은 사망 즉시 천으로 전체를 다 감싸는데, 투약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사망 전 몸이 몇 배나 불어나 몇 개의 보자기로 한참을 감싸야 하는 환자도 있다. 가족은 임종을 지키지도 못한다. 이 간호사는 “그렇게 온몸이 천으로 싸인 채 바로 화장장으로 이동하는데, 애도 기간도 갖지 못한 채 생이별하는 유가족을 보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음압중환자실의 코로나19 환자들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작은 동작만으로도 산소 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져 쓰러질 수 있어 늘 위기 상황에 노출돼있다. 간호사들이 사실상 간병인 역할까지 맡고 있어 노동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환자의 기저귀를 수시로 갈아 변의 상태를 확인하는 일은 기본이며, 욕창 방지를 위해 시간마다 자세를 바꿔주고 틈틈이 피부에 연고도 발라주어야 한다.

격리치료에 시달리는 환자의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는 것도 의료진의 몫이다. 이 간호사는 “‘감금했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겁박하는 환자, 무전기로 소통할 때면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소리치는 환자들이 있다”고 했다. 환자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CCTV와 전등이 24시간 가동되는 탓에 의료진도 이명에 시달릴 정도이지만 이마저도 환자들은 ‘편히 쉴 수가 없다’며 항의한다. 이 간호사는 “의료진에게는 환자의 호전이 유일한 보람이자 일하는 동력인데 ‘치료를 잘 못 해서 병을 더 얻어간다’는 말을 들으면 솔직히 너무 서럽다”고 했다.

경남의 한 의료원에서 일하는 김선경(가명·여) 간호사는 지난해 2월 이후 개인적인 만남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코로나19 환자를 매일 돌보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까 두렵기 때문이다. 치과 진료가 필요해 병원에 가야 하지만 이마저도 몇 달째 미루고 있다. 김 간호사는 “‘코로나19 전담병원에 근무하고 있다’고 하니 다른 환자가 없는 시간에 진료를 보러 오라는 답을 받은 동료도 있더라”며 “방호복을 오래 입으면서 기관지염, 피부염이 생긴 동료들이 많은데 동네 병원도 쉽게 가지 못하는 이들이 다수”라고 전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정리되고 난 후 벌어질 수 있는 사회적 낙인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 김 간호사는 “그간 감염병 환자를 봤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병원에서 근무하지 못하게 될까봐 두렵다”고 한숨을 쉬었다. 김 간호사는 “수시로 확진자 발생 문자가 울릴 때마다 화들짝 놀라고, 쉬는 날 혼자 집에 있으면 밖에서 앰뷸런스 소리가 한 번씩 들리는데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또 출근하면 얼마나 많은 환자가 와있고 이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까 숨이 턱 막힌다”고 전했다.

한건희 서울시 서남병원 가정의학과 과장은 몸에 찬 기운이 느껴지거나 목이 아프면 아예 집에 가지 않고 병원에 남아 잠을 청한 지 벌써 1년 가까이 돼 간다. 한 과장은 “철저하게 방역을 한다 해도 연세가 있으신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으니 걱정이 돼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병원에 종종 남아 있다”고 말했다. 가만히 있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수시로 체온계를 몸에 대는 강박도 생겼다고 한다.

한 과장은 전문의로서의 실력 저하에 대한 고민도 생겼다고 한다.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정신과, 가정의학과 등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의료진이 감염병 환자만 보고 있어 각자의 전공 기술을 키워나가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 과장은 “외과 선생님들은 ‘수술하는 방법을 까먹겠다’고 말할 정도”라며 “나 또한 전공 관련 환자를 못 본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고 말했다. 온라인 수업, 학회 활동 등을 틈틈이 병행하며 전공 지식을 습득하고 있지만 실제 환자 사례를 접할 수 없어 자신의 커리어가 곧 ‘감염병 전문가’가 되진 않을지 불안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현장 의료진이 처한 상황은 더 열악해지고 있다. 한 과장은 “병원에서 이탈하는 의료진이 늘어나 남은 인력의 소모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생활치료센터·역학조사관 파견 등 여러 곳으로 의료 인력이 차출된 탓에 병원에 남은 의료진에게 배정되는 환자가 초기에 비해 네 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당직 날에는 의사 한 명이 환자 200여명을 돌보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인력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적절하고 형평성 있는 보상이 수반돼야 한다고 현장의 의료진은 입을 모아 말한다. 언제까지 의료진의 사명감에만 기댈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의료진은 하나둘씩 동료를 떠나보내고 있다. 이은주 간호사는 “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사보다 더 많은 수당을 받아 간호사들 사이에서도 ‘차라리 파견 간호사로 지원해서 가는 게 낫겠다’는 말들이 나온다”고 전했다. 의사들도 생활치료센터 등에 파견된 의사가 훨씬 더 많은 임금을 받는 등 형평성 문제를 지적했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

[코로나 1년, 우리가 들어야 할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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