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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코로나 승자와 패자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신작 ‘공정하다는 착각’을 틈나는 대로 읽고 있다. 저자가 서구의 능력주의, 합리주의를 넘어 측은지심과 수오지심 등에 기반한 동양적 깨달음에까지 도달했다는 느낌이다. 정점에 선 사람은 그럴 만한 노력뿐 아니라 주변 상황 등 운도 함께 따랐다는 겸손이 발휘될 때 공동선의 성취가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문용린 서울대 교수는 서평란에 “부의 양극화와 이를 공고히 하는 고학력 세습화의 심화 그리고 승자들의 오만함과 패자들의 굴욕감 등 이 시대 가장 예민한 이슈에 수술 메스를 댔다”고 적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지난 11일 제안한 이익공유제도 샌델 교수의 생각과 맞닿아 있는 듯 보여 흥미롭다. 이 대표는 “코로나로 많은 이익을 얻는 계층이나 업종이 이익 일부를 사회에 기여해 피해가 큰 쪽을 돕는 다양한 방식을 논의하자”고 했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앞에서 비대면 업종이 운 좋게 큰 이익을 봤으니 사회연대 측면에서 기여를 하라는 주문이다. 이 대표는 “당내에서 꽤 많은 상의가 있었다”고 말해 당론화 논의에 진척이 있음을 시사했다. 그럼에도 이익을 본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코로나 승자와 패자로 양분하는 발상은 오히려 국민 화합을 해칠 수 있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이런 반발이 확산되는 것은 정부와 여당의 공정 프레임에 국민 피로도가 한계에 와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착한 임대료’ 정책만 해도 자영업자 임대료를 깎아 주지 않는 건물주는 나쁘다는 이분법이 숨어 있다.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보면 기본적으로 악한 세력은 절대 선해질 수 없으므로 계도 대상이 아닌 척결 대상일 뿐이다.

정의당 장태수 대변인은 “코로나 승자에게 합당한 사회연대세를 부과하고, 이를 재원으로 사회안전망을 제도적으로 구축하라”며 정부가 해야 할 사회안전망 역할을 코로나 승자에게 떠넘기는 발상까지 주문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부동산 가격 폭등의 원인을 정부가 ‘임대차 3법’ 강행 등 정책 실패가 아닌 저금리로 돌리고 있으므로, 집값 상승으로 덕을 본 사람들도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는 극단적 논리까지 가능하다.

비대면 업종 호황에 따라 코로나 승자로 거론된 기업들은 이익공유 거부 시 ‘여론의 린치’ 사정권에 들어간다고 봐야 한다. 이익공유제가 기업이 주주에 이익을 배당하는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건 아닌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미 법인세를 납부하는 상황에서 이익공유제는 규제개혁 대상인 준조세를 오히려 하나 더 추가하겠다는 발상과 다름없다. 기업이 필요하면 알아서 기부하는 게 순리이고 기부에 상응하는 세금 혜택도 이미 존재한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다지만 사회주의를 근간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몸에 밴 서구를 억지로 따라하기엔 한국의 경제 구조는 많이 다르다.

이 대표는 논란이 일자 13일 이익공유제를 민간 자율에 맡기자고 한발 물러섰다. 민주당 내 다른 인사들은 민간 자율이 오히려 압박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실효성에도 문제가 생긴다면서 아예 부유세, 사회연대세 등으로 걷자며 구체적 세목까지 거론하고 있다. 요약하면 4차례 추가경정예산으로 쌓인 천문학적 정부 부채 감당이 안 되자 증세 방침을 이익공유제로 에둘러 표현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양극화 확대와 사회적 거리두기 형평성 문제로 자영업자들의 반발이 커지자 그 책임의 일단을 코로나 승자들에게 씌우려 한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4월 보궐 선거와 내년 대선을 앞두고 포퓰리즘에 의존한 공정 프레임을 쏘아 올리기 위한 신호탄 냄새가 물씬 나는 것이 나만의 착각이길 바랄 뿐이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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