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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불해소 요구에 300명 해고 상생 외치던 그들은 어디로…

시공 SK건설 부랴부랴 대납… 해고 수당엔 난색

SK서린빌딩 앞에서 부당해고에 따른 해고수당 지급을 촉구하고 있는 노동자들.

“2개월간 밀린 임금을 달라고 항의한 다음날 아침, 공사현장 입구에서 출입카드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밀린 임금을 달라고 했던 건설근로자 300명이 하루 아침에 해고됐습니다. 엄동설한에 막막합니다”

SK건설이 시공하고 있는 이천의 SK하이닉스 신축건설현장에서 지난해 12월 8일 해고된 건설근로자들이 해고수당 지급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SK건설의 하청을 받은 ‘B&H’에서 재하청을 받은 ‘한맥이엔지’에 고용된 건설근로자들로 부당해고를 주장하고 있다.

해고된 건설근로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재하청 업체인 한맥이엔지는 지난해 10월과 11월 임금 두달치를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근로자들은 한맥이엔지를 대상으로 12월 공사현장에서 체불임금 지급을 요청했고, 다음날 해고통지 없이 공사현장 출입이 정지당했다.

해고된 이들은 실업급여도 신청할 수 없었다. 근로계약서상 이들은 일반 근로자가 아닌 프리랜서, 즉 개별 사업자로서 분류돼 있었기 때문이다. 근로계약서에는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음에 동의한다’라는 문구가 명시돼 있다. 한 해고 근로자는 “건설현장에서 근로자는 을”이라며 “일을 하고 싶으면 근로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사인을 하지 않으면 일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누가 사인을 하지 않을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인근 다른 업체로의 취업도 제한됐다. 다른 업체들은 이들의 채용을 기피했다. 한 해고 근로자는 “건설업체들 사이에는 소위 ‘블랙리스트’가 있다”며 “밀린 임금을 달라고 항의했다는 이유로 우리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다른 업체가 채용을 기피했다”고 주장했다.

임금이 체불되고 실업수당도 못 받게된 건설근로자들은 한맥이엔지에 해고수당 지급을 요청했다. 법적으로 근로자를 해고하기 위해서는 1개월전에 사전 통보해야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해고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요청에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해고된 근로자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전국건설노동조합까지 근로자들에 대한 지원에 나서자 원청들도 문제 해결에 나서기 시작했다. 일단 SK건설이 한맥이엔지에서 체불한 임금 약 23억원을 대신 지급했다. SK건설은 직접 관리하는 공사현장에서 임금체불이 발생했다는 점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밀린 임금을 직접 지급한 것으로 설명했다. B&H는 해고된 근로자 일부를 재고용하거나 다른 업체에 소개했다.

다만 SK건설이나 B&H는 부당해고에 따른 해고수당이나 4대보험, 건설근로자 퇴직공제부금 등에 대한 문제는 개입이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SK건설 관계자는 “도의적 차원에서 체불된 임금을 직접 지급했지만 세부적인 고용형태 등에 대해 알 수 없고, 계약의 주체가 재하도급 업체인 만큼 해고수당이나 4대 보험 등에 대한 해결은 어렵다”고 밝혔다. B&H 담당자 역시 “근로자들의 고용 계약은 하청업체와 진행된 것”이라는 답변만 내놓았다. 문제 해결의 핵심인 한맥이엔지의 입장도 들어보기 위해 접촉을 시도했지만 한맥이엔지의 사무실은 외부 연락을 차단해 놓은 상태였다.

건설노조는 건설업계의 다단계 하청 구조가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했다. 다단계 하청을 거쳐갈 때마다 줄어드는 공사비가 근로자들을 고용불안과 저임금, 부당한 노동행위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건설노동자를 프리랜서 취급하면서 4대보험과 건설근로자 퇴직공제부금을 미납하는 부조리가 건설근로자들를 위한 사회 안전망을 무력화 시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이번에 SK하이닉스 공사현장을 살펴보면서 수많은 불법과 부당한 대우를 받는 노동자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며 “하도급 업체의 편법·불법 경영에 대해 SK건설이 실질적인 조사를 통해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계원 쿠키뉴스 기자 chokw@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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