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 김 대리 퇴근시간 지났는데… 이 부장은 오늘도 “이것 좀”

근무시간 측정 못하는 특성 악용
거리낌 없이 잔업에 비대면 회의
정부지원 노린 ‘위장 재택’ 사례도


서울 마포구에서 일하는 20대 강모씨는 재택근무를 악용해 근무시간 외에도 계속 일을 시키는 상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무실에서 일할 때는 회사에서 나서기만 하면 상사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았지만 출퇴근이 불명확한 재택근무에 돌입하니 정해진 퇴근 시간 이후에도 수시로 일을 시키는 것이다.

강씨는 14일 “처음에는 출퇴근하는 시간이 절약돼 좋아했는데 이제는 퇴근 시간이 훌쩍 넘었는데도 ‘아직 퇴근 안 했지?’라며 일을 시키니 업무가 과중돼 미칠 지경”이라며 “재택근무가 직원에게 일을 더 시킬 수 있도록 악용되는 것 같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코로나19로 집에서 일하는 직장인이 늘어나면서 재택근무를 악용한 ‘잔업 근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한 유통업체에서 대리로 근무하는 30대 직장인 김모씨도 “회사에 출근하면 출입 게이트로 근무시간 측정이라도 되지만 재택근무는 근거 마련도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도 새벽부터 밤까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카톡방에서 ‘김 대리’를 호출하는 상사 때문에 이골이 날 지경이다. 심지어 김씨의 상사는 “어차피 집에서 편하게 일하는데 저녁에 회의를 해보면 어떻겠냐”며 수시로 비대면 회의까지 열고 있다. 김씨는 “비대면으로 진행하면 소통 시간도 배로 걸리는데 개인적인 시간까지 내라는 팀장이 원망스럽다”며 “재택근무를 악용하는 회사 때문에 직원 간 내부 갈등도 심화되는 꼴”이라고 전했다.

근로계약서에 엄연히 직원 복지혜택으로 명시된 부분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김씨는 지난해 다른 회사에서 이 회사로 이직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 대내외 지원 등 회사가 제안한 수많은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직 후 재택근무 지시가 떨어지면서 그가 회사에서 받을 혜택이라고 명시돼있던 부분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김씨는 “회사 구내식당 이용, 비품 사용 등을 제시해 놓고 이에 대한 보상 처리가 전혀 없다”며 “재택근무로 절약되는 비용은 당연한 것으로 사측이 생각하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재택근무를 위해 지원되는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 ‘위장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회사도 있다. 직장인 박모(26·여)씨의 회사는 “1주일에 3번 이상 재택근무를 해야 회사가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며 혹시 출근하더라도 지문을 찍지 말라는 지침이 지난해 말 내려왔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 회사의 직원들은 지침이 내려온 후 한동안 출근 시간을 찍지 않고 회사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반대로 재택근무를 악용해 태업하는 직장인도 있다. 약 반년째 재택근무 중인 20대 직장인 김모씨는 지난 연말에 업무가 줄어들자 근무시간에 운동하러 나갔다 온 적도 많았다고 한다. 김씨는 “회사 입장에서는 오히려 직원들이 이런 식으로 일을 제대로 안 하는 것이 단점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