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다비드상 우뚝… 르네상스 찬란하게 꽃핀 예술 광장

[세계의 광장을 가다] ⑦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

르네상스의 꽃을 피운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이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인 지난해 2월 16일 휴일을 맞아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다. 광장 오른쪽 베키오궁 옆에 우뚝 선 ‘바다의 신’ 넵티누스 분수와 궁전 앞에 설치된 다비드상은 그리스·로마 문명의 부활과 인문주의를 지향하는 르네상스를 상징한다.

“불멸의 신이여, 이제부터 제가 이야기하려는 이 도시, 피렌체의 영광에 필적할 만한 웅변력을 제게 주소서. 그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적어도 이 도시를 찬양하는데 필요한 열정과 희망만이라도 제게 주십시오.…어느 누구도 이 도시보다 더욱 빛나고 영광스러운 곳을 세상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르네상스시대 피렌체에서 활동한 인문학자 레오나르도 브루니는 1401년 ‘피렌체 찬가’라는 책을 쓰면서 벅찬 감동을 이렇게 표현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우뚝 서 있고, 브루넬레스코가 만든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돔이 상공을 수놓으며 단테의 숨결이 느껴지는 도시, 피렌체는 르네상스 문명이 시작되고 꽃핀 곳이다. 중세 1000년의 암흑기를 끝내고 그리스·로마 문명의 부활과 인문주의를 추구하며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천재들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 시뇨리아 광장이 있다.

코로나19가 유럽에 확산되기 전인 지난해 2월 16일 이탈리아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을 찾았다. 일요일을 맞아 나들이 나온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시뇨리아 광장을 가득 메웠다.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는 권력을 장악한 지배자를 ‘시뇨레(signore)’라고 하고, 시뇨레에 의해 통치되는 정치제도나 최고행정기관을 ‘시뇨리아(signoria)’라고 했다. 피렌체의 최고행정기관이었던 베키오 궁전이 광장 옆에 있었기 때문에 시뇨리아 광장으로 명명됐다.

시뇨리아 광장은 메디치 가문이 이끌었던 르네상스 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열린 공간이다. 시뇨리아 광장은 13세기 무렵 교황을 지지하는 세력(구엘프 당)과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지지하는 세력(기벨린 당)이 대립하는 과정에서 형성됐다. 구엘프 당이 피렌체를 장악한 뒤 정적에 대한 보복으로 기벨린 당원들 집이 모여 있는 시뇨리아 광장 일대를 초토화시킨 다음 그곳에 다시는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비움으로써 지금과 같은 공간이 생겼다고 한다.

시뇨리아 광장 한편에 그리스·로마 신화를 내용으로 한 조각상이 전시된 ‘로지아 데이 란치’가 있는데 르네상스 시대 디자인 광장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시뇨리아 광장에서 베키오 궁전을 바라보면 넵티누스 분수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분수는 1575년 코시모 1세 데 메디치가 이끄는 토스카나 대공국이 참전한 레판토 해전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의 수호성인이 아니라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 넵티누스를 주제로 했다는 것 자체가 당시 피렌체에 르네상스 기운이 넘쳤다는 것을 말해준다. 르네상스가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을 부흥시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내는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시뇨리아 광장에 우뚝 선 넵티누스는 르네상스의 상징적 조각품이다.

하지만 피렌체의 수도사이자 종교개혁가였던 사보나롤라의 눈에는 인간중심 사상이 싹트기 시작한 피렌체가 악의 온상으로 비쳤을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피렌체를 죄악으로부터 구해내어 하느님의 뜻에 맞는 거룩한 도시로 만들고자 했던 사보나롤라는 급진적인 주장으로 교황에게 파문당한 뒤 시민들에 의해 화형에 처해졌다. 지금도 사보나롤라가 화형당한 장소를 알려주는 바닥 표지판이 시뇨리아 광장 중앙에 있다.


시뇨리아 광장은 르네상스 시대가 추구한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광장이다. 광장이 지닌 조형적 아름다움은 그 안에 담긴 피렌체 시민들의 삶의 흔적과 합쳐지면서 예술 작품으로 승화된다. 광장 자체가 예술의 장이다. 미켈란젤로는 이 광장 공간을 예술적으로 장식할 방법을 조각상에서 찾았다. 그 결과 1504년 인간의 아름다운 육체를 표현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이 베키오궁 입구에 배치되고, 이것을 시작으로 다른 조각상들도 광장에 자리를 잡았다. 이처럼 비어 있는 공간을 채우는 내용물에 따라 광장은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조형 예술작품이 된다. 시뇨리아 광장은 인간의 아름다움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그 결과물을 공동체가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조성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디자인 광장이었다.

광장 한편에는 옥외 박물관 격인 ‘로지아 데이 란치’가 있다. ‘메두사의 목을 벤 페르세우스’ ‘파트로클루스를 부축하는 메넬라우스’ ‘네소스를 죽이는 헤라클레스’ 등 고대 로마·그리스 신화를 내용으로 하는 조각상들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로지아 데이 란치는 르네상스 시대 디자인 광장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개랑(開朗)’으로 번역되는 로지아(loggia)는 건축 파사드 일부에 옥외로 오픈된 지붕 달린 공간으로, 아치 구성이 많다. 르네상스 시대에 유행했던 로지아나 포르티코(Portico)가 직사각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안뜰 같은 공간은 로마적인 광장(포룸)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포르티코란 건물의 파사드 일부에서 도로에 접해 형성된 지붕 달린 복도 공간을 말한다. 미켈란젤로는 로지아 데이 란치를 광장 전체로 확장하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이 실현됐더라면 르네상스 광장의 대걸작이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베키오궁에서 아르노강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우피치 미술관의 열주랑에는 피렌체 르네상스를 빛낸 인물들의 입상이 줄지어 있다.

시뇨리아 광장에서 베키오궁 앞을 지나 아르노강으로 향하다 보면 단테, 보카치오, 페트라르카, 조토, 미켈란젤로 등 피렌체를 빛낸 인물들의 조각상이 줄지어 서 있는 우피치 미술관의 열주랑을 만나게 된다. 우피치 미술관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카라바조의 ‘젊은 바쿠스’ 등 피렌체의 주요 예술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우피치 미술관은 원래 미술관으로 설계된 건물이 아니었다. 이탈리아어로 ‘우피치’는 관공서나 사무실을 뜻하며, 영어 오피스(office)의 어원이다. 코시모 1세 토스카나 대공이 건축가 조르조 바사리에게 피렌체의 행정·사법기관을 한곳에 모을 수 있는 건물을 짓도록 하여 1584년 완공된 우피치는 두 채의 건물과 이를 잇는 회랑으로 이뤄져 외부에서 보면 ‘디귿(ㄷ)’ 형태로 보인다.

시뇨리아 광장은 중세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열망했던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에서 기능과 예술성을 겸비한 르네상스의 실험적인 장식 광장으로 조성돼 오늘날에도 관광객들이 즐겨 찾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시뇨리아 광장과 같은 예술적인 디자인 광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화문광장에는 세종대왕상과 이순신 장군상이 우뚝 서 있으나 단조로운 느낌이다. 새 광화문광장의 서 측 세종로공원 앞에 조성될 사계정원에 시민들이 감상할 수 있는 다양한 조각상을 배치한다면 광장의 기능성 외에 예술성을 겸비할 수 있지 않을까.

피렌체=글·사진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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