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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협력 급제동 걸린 삼성… ‘반도체 비전 2030’ 좌초 위기

이재용 구속에 ‘불안한 미래’
과감한 투자 결정 내리기 힘들어
‘돌발상황’ 대처 능력도 떨어져… 李 ‘옥중’서 긴급 현안만 챙길 듯

이재용 부회장이 다시 구속되면서 삼성전자는 전문경영인을 중심으로 한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할 전망이다. 다만 이 부회장도 옥중경영을 하면서 현안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 19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의 삼성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다시 구속되면서 삼성전자의 글로벌 협력 추진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파운드리 1위 기업인 대만 TSMC와 격차도 더 벌어질 것으로 우려되는 등 ‘반도체 비전 2030’ 달성에서도 빨간불이 켜졌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최근 타 업종의 글로벌 기업들과 잇따라 손을 잡는 등 업종을 넘나드는 글로벌 합종연횡 흐름에 가세하고 있다.

애플과 애플카 개발 협력을 논의 중인 현대자동차는 로봇 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도 인수하며 미래 사업을 대비하고 있다. LG전자는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전기차 파워트레인 합작 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SK텔레콤은 아마존과 손잡고 11번가를 통해 국내 이용자들이 아마존을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최근 대형 인수·합병(M&A)도 글로벌 협력도 가시화한 것이 없다. 2016년 11월 하만 인수를 마지막으로 뚜렷한 움직임이 없다.


현 주력 사업인 메모리반도체, 스마트폰, TV 등은 글로벌 1위를 달리고 있어서 다른 업체와 협력 필요성이 적다. 하지만 미래 사업으로 육성 중인 인공지능(AI), 시스템반도체, 자동차 전자장비 등은 협력이 필수적이다. 어떤 형태로 사업이 구체화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글로벌 기업들도 위험을 줄이기 위해 서로 손을 잡고 미래를 준비하는 분위기다.

한 재계 관계자는 19일 “규모가 큰 협력은 실무선에서 논의가 수없이 오가도 결국 최종결정권자의 결정이 있어야 한다”면서 “이 부회장이 없는 상황에서 전문경영인들은 현재 사업을 잘 유지하는 역할 이상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삼성 브랜드 전반의 대외신뢰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글로벌 기업들이 삼성과 협력을 꺼리게 될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수출규제 같은 돌발상황에 대한 대응력도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2019년 7월 일본이 불화수소 등 반도체 소재 수출을 금지했을 때 이 부회장은 일본을 수차례 방문하며 문제 해결을 진두지휘했다. 이 부회장은 당시 “긴장은 하되 두려워하지는 말자”고 사내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글로벌 경제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총수 부재가 삼성전자의 기민한 대응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당분간 ‘옥중 경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2017년 당시에도 주요 현안을 보고받으며 긴급한 현안은 처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옥중에 있던 2017년 7월 평택 반도체 공장 증설에 30조원 투자를 결정한 바 있다. 평택 공장 증설의 경우 이미 로드맵이 세워져 있던 사안이었지만 새롭게 시작되는 경영 현안에 대해서는 이 부회장의 경영 활동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전문경영인을 중심으로 한 비상경영체제가 작동하더라도 이 부회장의 부재로 미래를 위한 준비는 보수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를 목표로 13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반도체 비전 2030’ 구상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월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을 더 미뤘다간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이 비전을 세웠다. 사법리스크만 해소된다면 올해 최대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할 것이란 시장의 기대가 나왔지만 이마저도 무색해졌다.

첨단 반도체 라인의 경우 1개 라인 증설에 들어가는 비용이 3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대당 2000억원에 이르는 EUV(극자외선) 장비 구매를 사장단에서 결정하기도 쉽지 않다. 삼성전자와 장비 물량 확보 경쟁을 펼치는 TSMC를 1위 자리에 올려놓은 것도 모리스 창 창업주 겸 전 회장의 과감한 투자 결정 덕분인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일각에선 이 부회장이 2017년 구속되지 않았다면 TSMC를 추격하는 속도가 지금보다 더 빨랐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토로한다. TSMC는 최근 4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올해 설비투자액이 250억~280억 달러(약 27조~31조원) 규모에 이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 설비 투자를 지난해보다 축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준엽 김성훈 기자 snoop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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