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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노무현과 문재인의 사과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은 부동산 가격 폭등이 서민생활의 가장 큰 적이라며 임기 내내 ‘투기와의 전쟁’을 벌였다. 30여 차례의 크고 작은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는데 종합부동산세 도입,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투기과열지구 지정,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도입 등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격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집권 4년 차에 가장 많이 올라 1년 새 전국 아파트값은 13.75%, 서울은 24.11%(KB국민은행 통계) 급등했다. 임기 동안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무려 57%에 달했다.

노 대통령은 집권 5년 차인 2007년 1월 23일 신년 연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부동산 문제에 대해 죄송합니다. 올라서 미안하고, 또 국민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하고 한 번에 잡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1개월 전 부산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부동산 문제 말고는 꿀릴 것이 없다”고 했던 노 대통령은 지지율이 10%대 초반까지 추락하자 고개를 숙인 것이다. 결국 부동산 정책 실패가 정권에 치명타를 안긴 셈이다.

부동산 문제는 참여정부를 계승한 문재인정부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집값 안정을 위해 투기과열지구 확대, 보유세 강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 지금까지 24차례의 부동산 정책을 퍼부었다. 그럼에도 집권 4년 차인 지난해 전국 아파트값이 9%대 후반까지 올라 임기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집값 급등으로 지지율이 떨어지자 문 대통령은 결국 집권 5년 차인 지난 11일 신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거 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께는 매우 송구한 마음입니다.” 부동산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사과한 것이다.

14년의 시차를 두고 비슷한 장면을 본 국민의 마음은 씁쓸하기만 하다. 두 대통령은 임기 중반까지는 “부동산 투기와 벌이는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분양권 전매 제한, 투기과열지구 확대, 보유세 강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 수많은 규제를 쏟아내다 집권 말기에야 주택 공급 확대 카드를 꺼낸 것도 판박이처럼 닮았다. 굳이 차이를 따지자면 참여정부보다 문재인정부의 규제가 더 광범위하고 강도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시장에 반하는 규제 남발은 취지와 다르게 시장의 내성과 함께 가격 폭등으로 이어졌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최근 KB국민은행 등의 부동산 시세정보를 활용해 2003∼2020년 18년간 서울 소재 22개 단지 6만3000여 가구의 시세를 정권별로 비교·분석했는데 25평형(82.5㎡) 아파트값은 18년 동안 평균 8억8000만원(3억1000만원→11억9000만원) 올랐다. 이 중 60%에 해당하는 5억3000만원(6억6000만원→11억9000만원)이 문재인정부 시기의 상승액으로, 집권 이전 14년간 상승액 3억5000만원의 1.5배에 달했다. 상승률로 따지면 4년간 82%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일반 노동자가 서울에서 25평형 아파트를 구입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임금을 한 푼 쓰지 않고도 36년에 달했다고 경실련은 밝혔다. 이는 다른 나라 대도시 평균인 5년의 7배가 넘는 수준이다.

진보 논객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신간 ‘싸가지 없는 정치’에서 검찰 개혁에 올인하면서 부동산 가격 폭등을 막을 적기를 놓쳤고, 시장을 무시한 채 급조해낸 ‘과격한 방안’을 들고나와 문제를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제라도 5년 정권 내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아집과 독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다. 부동산에도 딱 들어맞는다. 과거에서 해결점을 찾지 못하면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된다. 지금의 위기만 잠시 틀어막을 일이 아니다.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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