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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의 알뜻 말뜻] 찬란하지 않은 찰나라고 해도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순삭’이라는 말이 있다. 순간 삭제. 순식간에 없어진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요샛말 중에서도 꽤 귀엽다. ‘순식(瞬息)’이라는 말이 있다. 눈을 깜빡이거나 숨을 한 번 쉬는 아주 짧은 동안을 말한다. 단순히 은유적 표현만이 아니라 실제 숫자 단위다. 10의 마이너스 16승. 소수점 이하 0이 무려 15개나 나온다. 순식의 10분의 1이 ‘탄지(彈指)’다. 손가락을 한 번 퉁기는 시간이다. 탄지를 다시 10분의 1로 쪼개면 우리가 잘 아는 ‘찰나(刹那)’가 된다.

사진을 흔히 찰나의 미학이라고 한다. 내 카메라의 셔터 스피드는 최대 8000분의 1초, 그러니까 0.000125초를 끊을 수 있다. 소수점 아래 0이 17개나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해도 이 정도면 사진이 찰나를 잡을 수 있는 매체인 건 분명하다. 6~7년 전 카메라 광고 중에 ‘지금이 가기 전에’라는 슬로건을 쓴 광고가 있었다. 스토리는 이랬다. 아르바이트하는 딸이 아빠의 생일 선물로 사준 카메라로 아빠는 계속 사진을 찍었다. 싫다는 아들, 딸, 아내를 마구 찍었다. 가족들 몰래 자신의 셀카 사진도 몇 장이나 찍어둔 아빠.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가족들은 아빠가 그토록 사진을 찍어댄 이유를 알았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을 이토록 요긴하게 활용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다니!

상황이 조금 작위적이긴 해도 광고는 가족의 일상을 ‘어설프게’ 찍은 아빠의 사진들을 ‘노련하게’ 보여줌으로써 스토리에 몰입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소비자들을 울컥하게 만들어 당장 카메라를 사게 만들려고 광고에서는 지금이 가면 사라지는 대상을 아빠, 그러니까 부모님으로 설정했지만, 지금이라는 순간이 지나면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것은 기실 우리들의 삶 그 자체다. 카메라가 발명되고부터 인류가 사진에 그토록 열광하는 것은 그래서일 거다.

사라지는 순간을 붙잡아둔다는 것.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부단히 써서 없애는 것만이 유일한 존재 방식인 우리들에게 사진의 미덕은 얼마나 황홀한가? 살아생전 시간을 소비하기만 할 뿐, 단 1초라도 시간을 생산할 도리가 없는 인간에게 사진은 시간을 소유할 수 있게 만들어준 유일한 방편인 거다. 우리는 그 방편에 기대어 매순간 사라지는 지금을 기억하고 간직한다.

이 광고가 만약 ‘지금이 가기 전에’가 아니라 ‘이 순간이 가기 전에’라는 카피를 썼다면 나는 이 광고를 기억하거나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고? ‘순간’이나 ‘찰나’는 영롱하지만 ‘지금’은 지루할 수도, 심지어 비루할 수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버리고 나면 다시 소유하고 싶은 시간이 되는 것, 그것이 우리들의 삶이니까.

그런 일상의 시간을 한 장의 이미지로 단단히 고정시켜 소중함을 발견할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카메라를 사야 할 이유이니까. 찬란하지는 않더라도 우리들의 지금을 허투루 쓰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런 ‘지금’이 새해가 되자마자 또 순삭 중이다.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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