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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쫑긋 세우고 말씀 듣는 맑은 아이들이 날 붙든 힘”

교회학교 사역 한길에서 40여년 여정 잠시 멈춘 이희숙 목사

이희숙 목사가 지난 5일 서울 오류동교회에서 토끼 모양 머리띠를 하고 44년 동안 미취학 아동 부서에서 목회했던 경험을 전하고 있다. 신석현 인턴기자

‘1976~2020년’. 이희숙(65) 목사가 교회학교 영아부와 유아부, 유치부에서 목회한 기간이다. 이 목사는 44년 동안 9개 교회의 미취학 아동 부서에서 목회했다. 5~7세 아이들이 출석하는 영·유아·유치부에서만 사역한 목회자는 흔하지 않다. 교회학교를 거쳐 교구 목사가 된 뒤 담임 목회를 하는 게 수순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목사는 교회학교의 산증인과도 같은 삶을 살았다.

장로회신학대 기독교교육과 73학번인 그의 동기 중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부총회장인 류영모 한소망교회 목사도 있다. 그만큼 고참이 됐지만 한결같이 어린이들만 바라보며 목회했다. 그동안 예장통합 총회 교육 교재 집필과 서울 유아·유치부 지도자협의회장, 장로회신학대와 서울장신대 유아·아동교육 강사로도 활동하며 전문성을 펼쳤다.

잠시 사역을 쉬고 있는 이 목사를 지난 5일 서울 오류동교회에서 만났다. 오류동교회는 이 목사가 어렸을 때 출석한 모(母)교회다. 이 목사는 토끼 모양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종종 설교할 때 쓰는 소품이라고 했다. 긴 세월을 반추하는 동안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간혹 눈물을 훔치며 벅찬 감정을 내비쳤다.

영·유아·유치부는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이 목사는 “76년 서울 새문안교회 영아부를 시작으로 지난해 경기도 구리 위대한교회 유아·유치부에서 사임하기까지 44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렸다”며 “귀를 쫑긋 세우고 말씀을 듣는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가 날 붙든 힘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아이들의 빛나는 눈동자를 볼 때면 마치 내 존재가 빛나는 것만 같았다”면서 “그 눈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뿌리내기길 바라고 또 바라며 말씀을 전했다”고 말했다. “긴 세월 어린아이들만 만날 수 있었던 건 결국 하나님이 주신 은혜였다”고 고백할 때는 참았던 눈물이 흘러 내렸다.

이 목사가 좌우명처럼 여긴다는 성경구절을 읽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잠언 22장 6절 말씀이었다. 마치 그가 걸었던 사역의 긴 여정이 담겨 있는 듯 들렸다.

이희숙 목사가 2019년 경기도 구리 위대한교회 유아유치부에서 사역하는 모습. 이 목사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찬양 역할극을 인도하고(아래 사진), 고난주간 예배에서 빵과 포도 주스로 성찬식을 집례하고 있다. 이희숙 목사 제공

약수교회 유치부에서 포도 주스를 가지고 성찬식을 했을 때의 일화를 들려줬다. “지훈이라는 아이가 예배가 끝난 뒤 ‘저 예수님 피를 마셨어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이와 눈을 맞추며 ‘이제 지훈이 안에 예수님이 계시네. 예수님처럼 사랑이 많은 아이로 살면 되겠구나’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떡하며 웃어 보이더라고요. 아이들은 복잡한 게 없어요. 신앙을 받아들이는 데 의심이 없어요. 믿은 뒤에는 신앙을 키워갑니다.”

이 목사가 한눈팔지 않고 영·유아·유치부 아이들에게 복음을 심었던 원동력은 결국 그 수많은 ‘지훈이들’ 때문이었다. 그는 “간혹 갈 데 없어 영·유아·유치부 사역만 한 것 아니냐는 말을 들을 때면 나를 거쳐 간 ‘지훈이들’을 떠올리며 힘을 낸다”면서 “복음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아이들과의 경험이 너무 소중해 스스로 선택했던 길이었다”고 말했다.

긴 세월 어린아이들에게 설교해서인지 이 목사의 말에는 어려운 표현이 담기지 않았다. 실제로 설교할 때도 어려운 단어를 쉽게 풀어 설명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지혜는 ‘하나님이 주신 좋은 생각’으로, 성령은 ‘우리 안에 살며 용기와 사랑을 주시는 따뜻한 예수님’이라고 풀어 설명하는 식이다.

쉬지 않고 아이들에게 질문하는 건 그의 설교 노하우다. 이 목사는 “아이들에게 신앙적인 질문을 한 뒤 스스로 대답할 수 있도록 인도했다”면서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신앙적으로 결단했고 그 결단이 아이들을 신앙 안에 살게 하는 힘”이라고 소개했다.

한국교회가 급성장하던 70년대 말 활동을 시작해 교세가 감소하는 시기까지 교회학교 현장을 지킨 그는 앞으로의 교회학교에 대해 염려가 크다고 했다. 무엇보다 “모든 게 풍족한 게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70년대에는 설교할 때 활용할 그림이나 소품 같은 교육 보조자료가 흔하지 않아 모든 걸 직접 만들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설교 동영상부터 각종 교육자료가 넘치지만, 오히려 복음의 열정이 식은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후배 목회자들에게는 “영성을 유지하고 본질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잊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는 “교회학교, 특히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한 목회는 현란한 영상과 보조자료만으로 되지 않는다”면서 “성령의 능력을 따라 첫 신앙을 심는다는 자부심으로 복음을 전하고 부모가 가정에서의 신앙교사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라”고 권했다.

은퇴까지 5년 남은 그의 바람은 영원한 현역으로 남는 것이다. “어디든 부르시는 곳이 있다면 달려가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빛나는 눈빛이 늘 그립네요. 영원한 현역으로 살며 아이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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