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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한 자루가
또르르
장롱 밑으로 숨다가
내게 들켰다.

나는 처음 알았다.
내가 잃어버린 것들 거의 모두가
그 밑으로 숨고 만다는 것을.

삼십 센티 뿔자를 넣어
훑어 낼 적마다
백 원짜리 동전
맑은 구슬 알
숙제 수첩, 딱지 몇 장
새 책받침…

이제 알았다
나 모르게
장롱 밑으로 숨고 마는 버릇들.

고무지우개에 딸려 나온
먼지덩이는
갑자기 햇빛에 나와
눈이 부신지
두 눈 다 감고 꼼짝 못 했다.

이상교 동시집 ‘나와 꼭 닮은 아이’ 중

한 번쯤, 아니 여러 번 겪어봤을 보편적인 기억을 떠올리는 동시다. 장롱 밑에 들어가 있는 물건이나 그 물건을 꺼내기 위해 어둠 속으로 밀어 넣은 ‘삼십 센티 뿔자’까지 어쩌면 이렇게 같은 기억일 수 있는지. 지난해 ‘찰방찰방 밤을 건너’로 권정생문학상을 수상한 원로 동시인 이상교의 두 번째 시집을 새로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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