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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차오르는 국뽕과 갈등사회 피로감 사이에서

천지우 논설위원


“신문을 보면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서 나라가 당장이라도 망할 것 같은데 왜 여태 안 망하고 잘 굴러가냐? 왜 세계가 대한민국에 열광하는 거냐?”

페이스북에서 이런 글을 봤다. 정권을 까대기만 하는 언론에 대한 분노와 함께 나라의 현 상태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한국은 선진국에 대한 추격을 완료하고 추월 단계에 진입했다. 열등감을 자긍심으로 바꿔야 할 때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비관론은 ‘너무 급속히 성장한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문화 지체’일 뿐이다.”

이건 1980년대생 6명이 함께 쓴 사회비평서 ‘추월의 시대’에 나오는 얘기다. 우리는 이미 객관적으로 선진국이니 지긋지긋한 열등감을 벗어던지고 당당해질 자격이 있다는 주장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이런 자신감과 낙관론의 기폭제가 됐다. 나라별 확진·사망자 숫자에서 국가 역량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니 자연스럽게 한국에 대한 자부심이 생긴 것이다. 코로나19로 많은 나라의 경제가 크게 망가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덜 망가진 것도 사실이다. 또 한국은 ‘D10’(G7에 세 나라를 더한 민주주의 10개국)에 포함되며 BTS와 손흥민, 영화 ‘기생충’ 등 소프트파워도 대단한 성과를 내고 있다. ‘국뽕’에 취하게 만드는 근거는 이렇게 많아졌다. 유튜브에선 ‘외국인들이 한국에 놀라는 이유’라는 식의 제목을 단 국뽕 콘텐츠가 큰 인기를 끈다. 사람들은 오랜 자격지심을 털어내고 마음껏 흐뭇해하려고 그걸 보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올해 ‘선도국가’로 도약할 것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역시 강한 자신감의 발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한국은 당당한 중견국가로서 선진국과 개도국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하며 상생할 수 있도록 가교국가의 역할을 다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선진국이면 선진국이지 중견, 가교는 또 뭔가. 혹시 “우린 선진국이다”라고 외치기엔 약간 민망한 구석이 있어서 이런 애매한 말을 붙인 건 아닐까.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에 모두 성공해 더 이상 약소국이 아니라고 부르짖는 ‘추월의 시대’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인 부분도 있지만,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목이 훨씬 많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 ‘헬조선’이란 자조가 가득하다 갑자기 자긍심이 넘치게 된 것이 영 어색해서일 수도 있겠다. 이 어색함, 민망함, 손발 오그라듦의 정체에 대해 생각해봤다.

예전에 선진국을 빨리 추격해야 한다고 조바심 내던 것이나, 이제 추월하고 있다고 뿌듯해하는 것이나 모두 개인을 국가와 동일시하는 관점에 기반한다. 좀 촌스럽고 구태의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라가 부강해지면 구성원들의 생활수준도 전반적으로 나아질 것이므로 당연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개인의 삶과 국가의 성쇠를 한 프레임에 넣어 생각하는 건 구식의 국가주의적 사고다. 지금 시대에 어울리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한’ 생각이 아니다.

선진국이든 아니든 모든 나라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지난달 국민일보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3.4%가 ‘한국 사회의 갈등이 지난 3년간 심해졌다’고 답했다. 정치적인 갈등도, 경제적인 갈등도 심각하다는 것이다. 정권 지지자와 혐오자가 서로를 맹렬히 미워하고, 성(城)안 사람과 성 밖 사람이 대립하고 있다. 분열의 정도가 더 심한 미국에선 20일 조 바이든이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시골과 도시, 보수와 진보가 싸우는 이 야만적인 전쟁을 끝내자”고 호소했다. 한·미를 막론하고 갈등이 이토록 팽배하다면 나라에 아무리 돈이 많아도 선진국이란 타이틀을 붙이기 어렵지 않을까.

뿌리 깊은 반지성주의, 얄팍한 지성의 문제도 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최정운 교수는 ‘한국인의 발견’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의 나라에서 학문을 배워오기에 급급했던 나라들은 자기 나라, 민족, 사회에 대한 지적 관심이 깊지 못해 진정한 주체성을 결여하고 있다. 우리 자신을 늘 되돌아보는 행위가 제도화돼야 하고, 이를 위해선 반지성주의가 극복돼야 한다. 반지성주의를 극복하고 우리의 지성과 학문을 이루게 되면 그때는 선진국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지적인 측면 등 여러 방면에서 두터움이 필요하다. 이젠 우리가 잘하는 게 많으니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자는 주장에 반대하진 않는다. 다만 가볍고 얄팍하면 공갈빵처럼 쉽게 부서지고 말 것이라는 경계의 말을 덧붙이고 싶다.

천지우 논설위원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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