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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친문인 듯 친문 아닌

임성수 정치부 차장


카를 마르크스는 생전에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을 추종한다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주장을 하고 있어서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지켜보면서 엉뚱하게도 마르크스의 말이 떠올랐다. 문 대통령을 지킨다는 ‘친문재인’ 진영의 생각과 문 대통령의 생각이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국민 앞에서 “나는 친문이 아니다”고 선언하는 것 같았다.

먼저, 윤석열 검찰총장 문제. 문 대통령은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그냥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며 “정치를 염두에 두고 정치할 생각을 하면서 지금 검찰총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윤 총장이 정치를 하고 있다”며 ‘윤 총장 찍어내기’를 제1국정 과제처럼 내세웠던 게 친문의 지난 1년이었다. 하지만 침묵으로 친문을 지지한다는 해석을 낳았던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반전을 연출했다. 최재형 감사원장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여당은 감사원의 월성 원전 1호기 감사 내내 ‘최재형 때리기’에 나섰다. 문 대통령을 보좌했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지난 14일 감사원장이 정치적 감사를 한다며 “전광훈, 윤석열, 이제는 최재형에게서 같은 냄새가 난다”고 원색 비난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감사원의 감사가 정치적 목적의 감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윤 총장과 최 원장에 대해 “너무 냄새가 난다”는 게 여당, “아무 냄새가 안 난다”는 게 문 대통령의 입장이다.

사면도 마찬가지다. 문재인정부 초대 총리였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새해 첫날 대뜸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을 꺼냈다. 박 전 대통령의 재판도 끝나기 전이었다. 당연히 문 대통령과 사전조율을 했을 것이라는 게 합리적 추론이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지금은 사면을 말할 때가 아니다”고 명백히 밝혀 이런 추론을 해석의 여지 없이 무너뜨렸다. 이 대표가 말한 ‘적절한 시기’의 ‘국민통합을 위한 사면’은 한참이나 뒤로 미뤄질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당연히 대통령과 이 대표가 논의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기자회견을 보고 나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며 당황해했다. 문 대통령은 중도층을 등 돌리게 한 ‘윤석열 찍어내기’, 촛불을 든 시민들을 실망하게 한 ‘정치적 사면’ 이 모두가 자기 뜻이 아니라는 걸 명확하게 했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 이틀 뒤 장관 인사에서 “나는 친문이다”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인선을 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지명 탓이다. 두 후보자는 친문 성골이라는 ‘부엉이모임’ 출신 의원이다. 특히 황 후보자는 문화·체육과는 전혀 인연이 없어서 친문 ‘부엉이’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발탁이었다. 임기 후반이라는 시점, 다주택자는 최대한 배제한다는 청와대 인사 기조 탓에 장관 후보자를 찾기 어려웠다고 여권은 설명한다. 아무리 그래도 “친문의 나라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인사다.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과 장관 인선에서 너무 다른 메시지를 국민에게 발신했다. 친문과는 다른 메시지를 내면서 친문에 대한 의존도는 높이는 국정 운영, 이 괴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저 ‘어진 대통령’과 대신 ‘악역’을 맡은 친문의 역할 분담인가. 아니면 대통령도 통제할 수 없는 친문 의원들의 ‘자기 정치’, 그럼에도 그 세력과 함께 갈 수밖에 없는 대통령의 ‘불편한 동거’인가.

임성수 정치부 차장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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