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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에서 총으로… 무의 나라 조선을 보여주다

국립고궁박물관 ‘조선 왕실 군사력의 상징, 군사의례’ 특별전

1796년 화성을 완성한 정조가 화성 동장대에서 군사들을 조련하는 장면을 그린 ‘동장대 시열도’. 왕의 자리 바로 근처에 배치된 신호용 악기와 깃발, 원형의 진을 치는 마병과 사각형의 진을 편성한 보병 등 국왕 주재 아래 진행된 군사훈련을 통해 ‘무치(武治) 조선’을 보여준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활과 창을 쏘는 조선군(동래부 순절도)과 조총을 쏘는 일본군(평양성 탈환도).

1592년(선조 25) 부산 동래성에서 왜군의 침략을 받아 싸우다 순절한 부사 송상현(宋象賢)과 군민(軍民)들의 항전을 그린 ‘동래부 순절도’와 1593년 이여송이 이끄는 명나라 원군과 조선군 연합군의 승전을 기록한 ‘평양성 탈환도’에 각각 묘사된 조선과 일본의 군사력 차이는 현격했다. 여인네들까지 지붕에 올라가 깨진 기와를 던지며 싸웠지만, 그것은 열세한 조선 군사력의 상징적 이미지처럼 다가온다.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이 ‘조선 왕실 군사력의 상징, 군사의례’ 특별전을 통해 무(武)의 나라 조선을 보여준다.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문치(文治)의 나라로만 인식됐던 조선을 ‘무치(武治)’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시도이다.

사진은 ‘동래부 순절도’의 일부인데, 활과 창을 쓰던 조선군과 조총을 사용했던 왜군의 현격한 군사력 차이를 알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무치 조선은 임진왜란 전후로 나눌 수 있다. 동래부 순절도 등 기록화가 보여주듯이 임진왜란이 조선 사회에 가져다준 충격의 강도는 컸다. 이후 조선에서는 총기를 다루는 포수를 포함한 특수부대를 양성하기 위한 훈련도감이 설치됐다. 선조 때 명나라 장수 척계광이 쓴 병서 ‘기효신서’가 널리 보급되고, 정조는 기효신서를 편집한 교련서 ‘병학지남’을 출간하게 했다.

국왕과 신하가 함께 모여 활쏘기를 하는 군사의례가 정비돼 성종 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대사의’(大射儀)라는 활쏘기 의식이 거행됐다. 정조의 그 유명한 화성 행차 장면을 기록한 병풍에는 군사 훈련 장면 ‘동장대 시열도’가 담겼다. 정조대에는 전투 대형을 그린 병풍 ‘영진총도병’도 제작됐다. 책을 사랑해 책가도라는 장르를 유행시킨 왕으로 알려진 정조가 깃발, 무기, 기호 등을 다양한 색을 이용해 기록해 진의 형태를 분명하게 알 수 있게 한 병풍 그림을 제작하게 했다. 철종은 자신의 초상화로 군복을 입은 모습을 남겼다. 일식이 있을 때 악한 기운에 맞서기 위해 군대가 도열했고, 전염병이 돌았을 때도 군대가 도열했다. 이처럼 문치와 무치는 동전의 양면 같았다.

전시의 한 축이 이런 서적과 회화라면 또 다른 축은 갑옷과 투구, 깃발, 무기 등 실제 사용한 유물이다. 조끼 형태의 전복(戰服)과 철릭, 갑옷, 갑옷 안에 입었던 내복 등 다양한 군복이 나왔다. 또 모직이나 면 갑옷 안에 금속이나 가죽으로 댄 갑찰을 댔다. 이 무게가 꽤 나가 이를 하지 않는 군인도 있어 기습 군장 검사를 했다는 영조 때의 기록도 있다. 활과 화살 등 각종 전통 무기와 함께 예포용 호준포, 군기를 잡기 위해 귀를 찔렀던 용도의 관이정 등 흥미로운 유물도 볼 수 있다.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족학물관과 함부르크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조선 시대 갑옷과 투구 등 40점이 건너와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되는 등 총 176건의 유물이 동원됐다.

나라 밖에서 귀한 유물이 건너왔지만 정작 국내에 있는 ‘동래부 순절도’(육군박물관 소장)와 ‘평양성 탈환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도)는 영상으로만 보여줄 뿐 실물은 없다. 국왕의 군사권을 과시하는 역동적인 회화인 ‘대열의’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임에도 이번 전시에 나오지 않았다. 공간 부족을 이유로 댔으나 활쏘기 체험장과 영상 체험장은 별도로 꾸며졌다. 체험을 강조하다 전시의 깊이는 놓친 것 같은 느낌이다. 3월 1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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