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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지방시대] 메세나 모델… ‘예향 전북’ 수많은 예술인들의 도우미

우진문화공간

담쟁이 넝쿨이 건물을 감싸고 있는 우진문화공간 본관 전경. 층고 높은 전시실과 7개의 연습실, 별채에 예술극장을 갖췄다. 우진문화공간 제공

전북 전주시 천변길을 걷다 보면 진북교앞 사거리에서 담쟁이 넝쿨이 감싼 건물을 볼 수 있다. 3층 본관엔 층고 높은 전시실과 크고 작은 연습실 7개가 있고, 별채엔 무빙라이트 등 고급 설비와 200여석의 좌석을 갖춘 예술극장이 있다. 우진문화공간은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수많은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도와온 든든한 친구이자 담장이다. 지방의 중소기업 대표가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한 메세나의 모델이자 ‘예향 전북’의 큰 자부심이기도 하다.

우진문화공간은 1991년 3월 전주시 서노송동에 처음 문을 열었다. 김경곤(74) 우진건설 회장은 40대 중반의 나이에 기업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고 지역 문화예술을 진흥하겠다는 결의로 사옥 일부를 개방했다. 이후 이곳은 전북을 중심으로 각 분야 예술인들의 창작 산실이자 발표 광장이 됐다.

우진은 먼저 판소리의 본향인 전주의 특성을 살리는데 중점을 뒀다. 주인공은 개관과 더불어 시작한 ‘판소리 다섯바탕의 멋’이었다. 당대 최고의 명창 5명을 초청해 춘향가와 수궁가 흥보가 심청가 적벽가를 2시간여씩 부르는 기회를 제공했다.

당시 무대를 찾기 어려웠던 소리꾼들은 이곳에서 마음껏 소리를 냈다. 안숙선 선생이 모두 14차례 찾은 것을 비롯, 동편제 수장이던 고 강도근 선생과 송순섭, 김일구, 오정숙, 성창순, 조통달 명창 등 연인원 150명이 참여했다.

박영준 제작 감독은 “모두 6차례 참여해주신 고 박동진 선생님은 ‘우진에서 부르면 어떤 일이 있어도 달려간다’고 말할 정도로 이 프로그램을 아끼셨다”며 “판소리공연을 정례화해 이 시대에 건강하게 전승되는 예술이라는 인식을 높여왔다는 평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우진은 다양한 기획 사업으로 예술가와 관객 사이의 다리가 됐다. 개관 이듬해 새내기 화가들의 데뷔를 돕기 위해 ‘신예작가초대전’을 시작했다. 지역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갓 화단에 나온 작가 400여명이 29년간 이름을 올렸다.

지난 해 12월 서른 번째 펼쳐진 ‘판소리 다섯바탕의 멋’ 포스터.

1995년 첫발을 내딛은 ‘우리소리 우리가락’은 실험적인 공연을 지원하는 사업이었다. 국악으로 시작됐지만 양악과 퓨전까지 분야가 확대돼 지난해까지 131차례 막이 올랐다.

94년부터는 45세 이하 지역 화가들 중에 해마다 3명 정도를 선정해 지원금을 주고 ‘청년작가초대전’을 열어줬다. 이들은 ‘우진청년작가회’를 구성, 8년 전부터 기획전도 열고 있다. 우진은 이들의 견문을 넓혀 주기 위해 해외미술기행도 2년마다 추진해 비용을 전액 지원했다.

젊은 무용가들이 자신이 안무한 작품을 선보이는 ‘우리춤 작가전’도 첫해부터 맥을 이어오고 있다.

우진문화공간은 2001년 재단법인으로 거듭났다. 2004년엔 지금의 자리에 새 둥지를 틀었다. 연면적 3481㎡에 이르는 공간을 적극 활용하여 창작 작업을 후원하고 적은 비용에 대관해줬다.

다른 시·도에서는 이 같은 사례와 추진력을 찾아보기 힘든 대단한 발걸음이었다. 시나브로 도민들의 자랑으로 자리 잡았다. 군산 등 다른 지역에서 벤치마킹을 해 민간문화재단을 세우는 사례도 늘어났다.

우진문화공간은 지난해 전주시와 함께 ‘전주완창무대’를 신설했다. 한 소리꾼이 4∼9시간에 이르는 소리 한바탕을 끝까지 부르는 극한 무대다. 판소리가 지속 가능한 전통 예술이 되게 하기 위한 실험이다.

“예술을 하도록 태어났으나 쓸쓸하고 가난한 사람들, 이들이 당당하게 자존감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날을 앞당기는 일이 우리의 일입니다.”

김선희 이사장(오른쪽 사진 앞줄 가운데) 등 우진문화공간 직원들이 지난 22일 본관 입구에서 사진을 찍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우진문화공간 제공

김선희 우진문화재단 이사장은 “이 공간은 열악한 환경에서 끊임없이 창작에 매진하는 지역 예술인들의 디딤돌이 되고자 묵묵히 걸어왔다”며 “그동안 해 온 것을 중심으로, 앞으로도 내실 있게 전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설립자 김경곤 우진건설 회장
“뒤에서 조용히 도울뿐… 우진문화공간 최소 100년은 가야”

우진문화공간이 예술인들의 안식처가 되고 메세나의 전국 모범이 된 것은 설립자인 김경곤(74·사진) 우진건설 회장의 남다른 철학과 헌신 덕분이다.

김 회장이 우진문화공간의 간판을 단 1991년에는 메세나의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김 회장은 이후 30년간 기업 수익의 일부를 조건 없이 기부하고 한결같은 애정과 책임감을 보여왔다. 앞서 82년 전북역도연맹회장을 맡았을 때 전폭 지원한 13세 소년 전병관은 10년 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며 세계적인 역사(力士)가 됐다.

그는 일상에서 짠돌이란 소리를 듣지만 문화예술 지원에는 해마다 1억원 이상을 써 왔다. 17년전 지금의 우진문화공간 신축과 시설비 지원에는 50억원을 쾌척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철저히 그림자 후원을 해왔다. 우진문화재단의 아무런 직함을 갖지 않고 그저 ‘설립자’란 명예만 간직하고 있다. 언론에 나오는 것도 정중히 사양하고 재단 인터넷 홈페이지에 인사말조차 적어두지 않았다. 한국메세나협회는 2013년 ‘한국메세나대상-메세나인상’을 수여했다.

지난 21일 어렵게 마련된 기자와의 티타임에서 김 회장은 몇 마디 인사만 대신했다. “우리 재단과 문화공간 가족들이 잘 해오고 있습니다. 더 많이 응원해 주십시오.”

김 회장은 “어려운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에 힘이 되고 지역 문화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며 “개입이나 관리를 벗어나 그저 조용히 뒤에서 돕는데 충실해 왔다”고 회고했다.

“우리 우진문화공간, 최소한 100년은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회장은 “장학사업이나 체육진흥, 이웃돕기 등은 성과가 나타나지만 문화사업은 그렇지 않다”며 “앞으로도 지역 문화예술 진흥에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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