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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근면성실의 슬픈 퇴장

김찬희 디지털뉴스센터장


60명 넘는 아이들을 욱여넣은 국민학교(1996년에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교실은 콩나물시루였다. 훌쩍 커버린 6학년 아이들 몸에 맞지 않는 책걸상에서 나는 소리로 늘 시끌벅적했다. 그래도 조회와 종례 때에는 제법 엄숙했다. 그 시간에 공간을 지배하는 건 담임교사도 학생도 아니었다. 큰 칠판의 오른쪽 위에 자리한 급훈이 공기를 내리눌렀다. 근면성실(勤勉誠實). 조회에서든 종례에서든 하루에 한 번은 이 단어가 담임교사 입에서 흘러나왔다. 근면하라, 성실하라. 이게 너희를 바르게 이끌 것이다. 교실을 떠다니던 단어는 세월이라는 무게 추를 달고 일상의 바닥에 뿌리내려 더 단단해졌다. 근면하고 성실하다면 크지는 않아도 적당한 재산을 얻고 적당한 사회적 지위에 오를 수 있다고 믿게 했다.

근면성실의 사전적 의미는 ‘부지런히 힘써 일하며 정성스럽고 참됨’이다. 근사한 뜻이지만 현실에서 용례는 좀 다르다. 꽤 오랜 기간 살인적 노동시간, 과로 사회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맹위를 떨치던 근면성실은 이제 우리 일상에서 퇴장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을 강제하는 환경이 바뀐다는 점에서 반갑기도 하다. 다만 달갑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

우리 사회는 자본소득이 근로소득을 압도하는 체제로 변모하고 있다. 어느 연예인은 55억원에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빌딩을 사들여 3년 만에 시세차익 25억원을 남기고 팔았다고 한다. 고교 동창은 대출받아 전세를 끼고 목동 아파트를 사서 2년 만에 7억원을 벌었다. 부동산 가격이 무섭게 치솟자 집 한 칸 없는 후배는 대출을 얻어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근로소득으로는 내 집 마련을 꿈도 꿀 수 없어 ‘살길’을 찾는다고 했다.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노동이 돈을 버는 속도를 월등히 앞서는 건 예사롭지 않다. ‘불안의 냄새’마저 풍긴다. 일자리-근로소득이 지탱하던 생태계부터 무너지려 한다. 근로소득으로는 충분한 자산을 쌓을 수 없을뿐더러 근로소득을 얻을 일자리마저 사라지고 있다. 인공지능(AI), 로봇으로 무장한 4차 산업혁명의 폭풍 앞에서 일자리는 알게 모르게 줄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은 치명타를 날렸다. 일자리를 잃고 ‘소득 생태계’ 밖으로 내몰리는 이들이 잇따른다.

더 크게 곪는 건 자산 불균형이다. 지난해 3월 기준으로 상위 20% 가구의 순자산은 평균 11억2481만원인데, 하위 20% 가구는 675만원에 불과하다. 순자산 지니계수는 2017년 0.584에서 2018년 0.588, 2019년 0.597, 지난해 0.602까지 오르고 있다. 1에 가까워질수록 상위계층과 하위계층 사이에 놓인 틈이 커짐을 의미한다. 근로소득을 모아서 자산을 만들고 그 자산이 몸집을 키우는 게 선순환이라면 지금은 씨앗이 될 근로소득이 없거나 미미하다는 딜레마에 봉착했다. 여러 나라가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풀었는데 오르라는 경기는 오르지 않고 부동산·주식만 뜨거워지는 궁지에 빠졌다.

팬데믹은 끝날 것이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에서 우리는 극심한 양극화를 목격할 수밖에 없다. 실업 장기화, 투자 위축, 일자리 실종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 속에 소득·자산 불평등이라는 고름이 쌓일 것이다. 근면성실을 표어로 쓰던 시대의 퇴장은 슬프지 않다. 대신 성실하게 일해 집을 장만하고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시대의 퇴장과 겹친다는 건 슬픈 일이다. 노동으로, 근로소득으로 이룰 수 있는 게 갈수록 적어진다는 건 위기의 전주곡처럼 들린다. 불평등과 양극화는 불땀 좋은 땔감이다. 언제든 큰불을 일으켜 공동체를 위협할 수 있다. 코로나19 퇴치와 함께 사회안전망 강화, 소득재분배 강화에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김찬희 디지털뉴스센터장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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