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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만들어진 무죄

송기호 변호사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이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만을 쓴 피해자로 정부가 인정한 사람은 196명이다. 그러나 지난 12일 법원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가 있는데 왜 무죄가 나왔는가?

법원은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 성분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이라는 화학물질에 주목했다. 이 물질들은 국립환경과학원이 2012년에 ‘유독물에 해당함’이라고 고시했다. 그런데 법원이 형사 공판의 증거 조사를 통해 얻은 결론은 이 물질이 코와 비강(콧구멍에서 목젖 상부까지의 빈 곳) 등 상부 호흡기도(상기도)에 염증 등을 유발한다는 것에 그쳤다. 반면 검사가 기소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피해자 질환은 폐질환과 천식 같은 하부 호흡기도(하기도) 질환이었다. 바로 이 지점이었다. 법원은 이 사건의 피해자 질환이 과연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발생한 것인가에 대한 의심을 해소하지 못했다. 형사소송법은 유죄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는 ‘합리적 의심이 배제될 정도’로 입증이 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SK와 애경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인정한 196명의 존재는 무엇인가? 피해자들의 피해는 무엇 때문에 생겼는가? 법원은 판결문에서 환경부가 피해자로 제시한 사람들이 과연 기소된 사건의 가습기 살균제만을 단독 사용했는지도 불분명하다고 썼다(127쪽). 교통사고 사건을 예로 들면, 공소장에 사고 피해자로 적혀 있는 사람이 정말로 사고를 당한 피해자 본인이 맞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는 말과 같다. 이처럼 검찰 기소의 전제가 되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조차 법원에 의해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보통의 형사 공판 절차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2011년 한국 사회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라는 비극을 인식했을 때 당시 질병관리본부와 검찰 그리고 환경부는 CMIT/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조사 요구를 외면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질환은 폐섬유화’라는 등식을 피해자들에게 강요했다. 그러나 폐섬유화를 일으켰던 옥시 가습기 살균제는 원료 유독물질이 CMIT/MIT가 아니었다. 원료로 쓴 유독성 물질이 다르면 그로 인해 나타난 피해 증상도 다를 것임이 상식이다. 그럼에도 국가는 한사코 폐섬유화하는 특정 질환만을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좁게 인정했다. 국가가 천식을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처음 인정한 때가 2017년이었다. 이처럼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질환에 대한 체계적 조사는 오랫동안 차단됐다.

2017년에서야 환경부는 이번에 기소된 CMIT/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에 대해 동물실험을 시작했다.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해가 없는 안전한 제품’이라는 문구를 용기에 박은 채 소비자 앞에 출시된 2002년부터 15년이 지난 후였다. 자신이 쓴 가습기 살균제 구입 영수증이나 빈 통을 그렇게 오랜 시간 보관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울 만큼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그 결과가 이번 무죄 판결이다. ‘만들어진 무죄’이다.

항소심에서 정의를 세워야 한다. 국가가 조사하지 않았던 사이에 소수의 피해자가 나서서 광범위한 피해 질환을 조사하려고 노력했다. 이제 검찰의 시간이다. 피해자들 전반에 대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질환 자료를 수집 분석해 인과 관계를 입증해야 한다. 다른 원인에 의해서는 그러한 공통적 질환이 피해자들에게 발생할 수 없음을 역학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원의 합리적 의심을 해소시켜서 소비자들에게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무해’한 제품이라고 표시해 판매한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산다. 그래야 공정하고 활력 있는 경제로 한 단계 더 성숙할 수 있다.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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