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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이런 후보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TV 프로그램 ‘신박한 정리’를 좋아한다. 연예인 가족들이 ‘필요’ ‘욕구’ ‘버림’이라고 적힌 박스 세 개에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전문가의 도움으로 달라진 집안을 확인하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비움의 힘과 정리의 미덕을 배운다. 그런데, 문제는 배움에서 그친다는 거다. 도통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가슴으로 간직하고 제발 버리세요!”라는 진행자 신애라의 목소리를 떠올리면서도 그 옛날 비디오 플레이어와 비디오 테이프 한 상자를 고이 모셔두고 있으니 말이다. 버리지 못하는 테이프들 중에 할리우드 영화 ‘데이브’가 있다. ‘고스트 버스터즈’ 같은 코미디 영화로 1980년대를 풍미한 아이반 라이트만 감독에 빼어난 코미디 배우인 케빈 클라인과 ‘에일리언 시리즈’의 여전사 시고니 위버가 주연을 맡았다.

내용은 이렇다. 소시민 데이브는 대통령을 빼닮은 외모 덕에 대통령의 대역으로 발탁돼 대통령 대신 행사에 참석한다. 잠시 대통령 흉내를 내는 게 곧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라는 꼬임에 넘어갔는데, 대통령은 그를 대역으로 세워놓고 혼외정사를 벌이다가 뇌졸중으로 혼수 상태에 빠진다. 대권을 꿈꾸는 대통령 비서실장은 데이브를 허수아비 삼아 국정을 장악하려는 계략을 꾸민다. 나라를 위해 협조해야 한다는 그의 강요에 데이브는 대통령 역할을 계속하는데, 여러 행사에서 꾸밈없는 소탈한 면모를 보이자 오히려 대통령 지지율이 치솟는다.

어디서 많이 본 내용이라고? 맞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개봉 당시 이 영화의 설정과 흡사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다소 비장한 ‘…왕이 된 남자’와 달리 ‘데이브’는 시종일관 따뜻한 코미디다. 남편의 바람기에 신물이 난 퍼스트레이디와 데이브 사이에 핑크빛 무드가 조성돼 재미를 더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백악관에서 속성으로 정치 과외를 받고 정치에 눈뜨는 데이브의 성장기에 가깝다. 좌초될 뻔한 저소득 무주택자들을 위한 공공복지 법안을 살려내는 대목이 그렇다. 대통령 대신 법안을 거부한 비서실장은 그들에게 집을 주고 싶으면 부족한 예산 6억5000만 달러를 만들어내라고 데이브에게 큰소리를 친다. 데이브는 회계사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예산을 검토하고, 각료회의에서 장관들을 설득해 각 부처의 불요불급한 예산 삭감을 이뤄내 뜻을 관철한다.

어느 선거가 중요하지 않겠느냐만, 코로나19로 대전환기를 맞고 있는 올해와 내년 큰 선거가 잇따라 기다리고 있다. 오는 4월에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치르고 나면 내년 3월에 대선, 6월에는 지방선거다. 선거를 앞두고 여당은 이른바 ‘상생 3법’(손실보상법·협력이익공유법·사회연대기금법)을 처리하겠다고 공언했고, 야권에서는 ‘매표 3법’이라며 쌍지팡이를 짚고 나섰다. 코로나19로 휘청이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지원하겠다는 데 반대하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돈이다.

세금이 허투루 쓰이는 곳을 찾아내 꼭 필요한 곳으로 돌리는 데이브 같은 알뜰살뜰한 후보는 언감생심이다.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은 언급하지 않고 수십조원을 풀겠다는 정치인보다는 세금이 제대로 쓰일 것이고, 내가 낸 만큼 나에게 돌아온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국민의 협조를 구하는 후보가 있다면 더 믿음직할 듯하다. 보편 증세를 말하며 “북유럽 복지국가 수준의 재정 확충으로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던 정당 대표가 있었지만 같은 당 의원을 성추행한 가해자였음이 드러났다. 올해와 내년에도 선거 후 찍었던 손가락을 자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지 않을 후보를 고르는 게 퍽이나 어려울 것 같다.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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