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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가슴 아픈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대구에선 한 실내체육시설 관장이 코로나19로 인한 생계의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입양아 정인이는 양부모의 학대와 방임 속에 16개월이란 짧은 생을 마감했다. 관장과 정인이의 죽음은 지금 우리 사회에 ‘생존’이 절박한 현실적 문제임을 보여준다.

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이 되고 있다. 사람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주요 원인은 심리적 문제, 경제적 요인, 가정의 문제다. 각각의 요인들이 결합하면 ‘불행의 시너지’를 일으킨다. 지속적인 사회적 거리두기로 생계가 막막해진 자영업자들, 직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거나 무기한 휴직 상황에 놓인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경제적 압박은 심리적 압박으로 이어진다.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가장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절망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이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코로나 방역뿐 아니라 심리방역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사실 생물학적 코로나 확진자보다 훨씬 많은 이가 심리적 코로나 확진 상태다. 혼자 견디고 이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함께 아파하며 울어주는 이웃이 필요하다. 그들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피부에 와닿는 정책을 펼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코로나19로 확진된 이들을 낙인찍고 죄인 취급해선 안 된다. 코로나 상황에서 경제적 어려움에 내몰린 이웃의 아픔을 외면해선 안 된다. 공존의 지혜, 나눔의 사랑이 필요하다.

생존하려면 공존해야 한다. 나만 사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한다. 정인이의 죽음에서도 지금 우리 사회에 공존의식이 얼마나 필요한지 절감하게 된다. 정인이는 생후 7개월 만에 입양됐다. 법원과 아동입양 기관에서는 양모의 정신과 치료 이력을 알고도 입양을 허가했다. 정인이가 다니던 어린이집과 소아과 등에서 잇따라 학대 의심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세 번이나 묵살했다. 양부모의 가정은 목회자 집안이다. 그러나 양가에서 정인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적극적 조치를 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인이가 학대받고 세상을 떠나는 과정을 보며 떠오르는 성경 구절이 있다. ‘보라 학대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전 4:1) 살고 싶었고, 살아야만 했던 어린 생명을 누가 품어줬고 위로해줬는지 돌아보게 된다. 우리 모두에겐 정인이의 죽음을 방치한 책임이 있다.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는 하나의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정인이가 생기지 않도록 “내가 정인이를 지키는 자입니다”라는 고백으로 이어져야 한다.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무명의 오바마가 기조연설을 했다. 오바마는 글을 읽지 못하는 소년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이고 약값을 지불하지 못하는 노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라고 했다. 자신은 동생을 지키는 자라고 공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미국은 훗날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자신만 보는 생존의식에서 나아가 쓰러진 동생을 보는 공존의식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공존하려면 함께 아파하는 컴패션(compassion)이 필요하다. 강도 만난 자를 불쌍히 여겨 그를 싸매어 줬던 선한 사마리아인의 마음과 행동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7)고 명하셨다. 이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갈 힘은 공존의 지혜, 사랑의 나눔에 있다. 어려울수록 더 나누며 도와야 한다. 어려울수록 더 사랑해야 한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해선 안 된다. 더이상 생존의 위기로 생명을 내놓는 일이 없기를, 피투성이라도 살아있기를, 생존을 넘어 공존하기를 염원한다.

임용택 목사 (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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