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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나의 세계가 확장된다면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동생이 아기였을 때 선천적으로 심장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상한 점 없이 잘 먹고, 잘 노는데 수술을 꼭 해야 하는 건지, 한다면 언제 해야 하는지, 수술만 하면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는지 등등 병원에 다녀온 엄마를 중심으로 가족들이 걱정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무래도 멀쩡한 사람보다 장수하긴 힘들지 않을까”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서너 살 꼬마였던 동생이 그걸 들었나 보다. 며칠 후 바다가 배경인 동화책을 보다가 “엄마, 나는 잠수 못하지?” 하며 시무룩해하는 게 아닌가. 귀여워서 한바탕 웃기는 했지만 아직 장수는 모르고 잠수만 아는 꼬마였기에, 동생에게 심장병은 잠수를 못하는 것으로 이해됐던 것이다.

살면서 그때의 에피소드가 생각나는 일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한번은 작가의 작품이 손상돼 복원하시는 선생님께 문의해야겠다고 했더니 왜 미술 선생님이 아니라 보건 선생님한테 작품을 물어보냐고, 복원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았던 학생이 물었다. 작품 설명 자료에 ‘장지에 채색’이라고 써 놓은 걸 보고 ‘장지애’가 맞지 않느냐며 작가 이름에 오타가 있는 것 같다고 알려준 사람도 있었다. 한지를 여러 장 겹친 종이인 장지 위에 그렸다는 뜻이었지만 그분 주변에 ‘장지애’라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며 웃었던 일화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 살더라도 각자의 세계는 모두 다르다. 나이나 성별에 따른 차이 외에도 개인을 둘러싼 환경과 사람들이 다르고, 이후의 학습과 선택과 경험이 다르므로 모든 개인에게는 고유한 자신만의 세계가 구축된다. 그 세계의 크기와 깊이는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 점점 넓고 단단해지기도 하고, 핵폭발 수준의 충격을 받아 무너지기도 하며, 어느 새 다시 싱그럽게 되기도 한다. 우리는 각자의 세계를 통해 같은 상황에도 다르게 대처하고, 같은 이슈도 다른 크기로 받아들인다.

오래전 일이지만 ‘체인지 메이커의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다. 매주 두 번 만나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찾고 사업 계획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이었다. 17세부터 39세 사이의 다양한 사람들이 같은 팀이 됐다. 30대 초반이었던 나는 또박또박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말하는 10대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신선함을 느꼈는데 그들 중 한 명은 10년 후에 서울시장 후보가 됐다. 다양한 배경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동등한 참여자로서 한 팀이 돼 미션을 수행해 나가는 경험을 통해, 가족과 직장 동료를 통해서만 이뤄진 나의 좁은 세계가 한 뼘 넓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고등학생과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고,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70대와 대화를 나눠 본 기억이 없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이 생각해볼 만한 주제로 남았다. 지방에서 올라와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분들도 있었는데 다른 지역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흥미로웠다. 같은 또래나 같은 조직, 같은 지역에 속한 사람들하고만 접하다 보니 세대의 차이, 집단의 차이, 지역의 차이가 생기는 게 아닐까. 평소에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연결될 수 있다면 우리 안의 세계가 확장되고, 비난과 갈등 대신 이해와 협력이 늘어나지 않을까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가끔 나와 열일곱 살 차이가 나는 대학생 친구와 영화나 전시를 보러 간다. 그 친구가 고등학생일 때 알게 돼 10년째 가까이 지내고 있다. 패션을 전공하는데다 워낙 관심이 많아서 옷과 쇼핑에 대해 가장 많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물론 내가 조언을 받거나 물어보는 쪽이다. 패션에 대해 얘기할 때 그 친구에게 나는 장수를 잠수로 이해하고, 복원을 보건으로 알아듣는 사람이다. 사는 집은 작더라도, 나의 세계는 더 넓고 깊어졌으면 한다. 나의 세계가 확장된다면, 그걸로 충분히 즐겁다.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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