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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 신에게서 배우는 인공지능

이대성 연세대 교목실장


오늘날 인공지능이나 로봇공학에 종사하는 공학자들은 밀턴의 ‘실낙원’을 꼭 읽어 봐야 한다. 실낙원은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와 타락의 이야기를 풀어 쓴 문학 작품인데, 성서가 생략하고 넘어간 많은 내용을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복원해 자세하게 묘사한다.

밀턴은 이 책 8장에서 아담이 최초로 의식을 갖게 됐을 때의 장면을 아담의 관점에서 묘사한다. 아담이 처음 눈을 뜨고 보니 자신이 꽃밭에 누워 있었고 하늘에는 밝은 빛을 비추는 태양이 있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똑바로 서서 주위의 산과 들과 시냇물을 둘러보았고, 지저귀는 새를 비롯한 온갖 살아 움직이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아담은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을 향해 미소 짓는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가슴에는 향기와 기쁨이 넘쳐흘렀다고 회상한다. 곧 그는 자신을 살피고, 손발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관절을 움직이는지 파악해 부드럽게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어째서 있게 됐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가 말하려 하니 쉽게 말이 나오고 혀도 잘 움직였고, 보는 것은 무엇이나 이름을 지을 수 있었다.

밀턴은 시대를 앞서서 아담의 최초 행동을 마치 로봇이 최초로 부팅된 후 겪게 되는 과정과 유사하게 묘사했고, 그런 접근은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럼에도 창세기나 실낙원이 로봇공학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로봇으로 치면 아담은 오늘날 로봇공학이 구현하고자 하는 수많은 중요한 능력을 갖춘 완제품의 형태로 세상에 나왔다. 시각, 청각, 후각 등 감각 센서가 잘 작동하고, 신체의 기계적 움직임도 완벽하다. 그는 미소·기쁨과 같은 정서를 처리할 수 있으며 언어를 이해하고 구사하는 능력, 이름을 지음으로 사물과 생각을 연결하는 상징적 사고 능력도 갖추고 있다. 스스로 학습할 수 있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을 할 수 있다. 밀턴은 더 나아가 아담이 추리를 통해 자신이 스스로의 힘에 의해 생겼을 수 없고 분명 월등한 대창조주가 계시고, 그분을 숭배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판단을 하는 것으로 그린다.

최고의 설계자에 의해 만들어진, 자의식을 가진 최초의 존재인 아담은 당연히 모든 로봇의 프로토타입(시제품)이 될 수밖에 없지만 로봇공학이 과연 구현할 수 있을지, 혹은 구현하는 것이 맞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갖고 있다. 그것은 자유의지다. 실낙원 3장에서 신은 인간의 타락을 예지하지만, 예지 때문에 인간에게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신은 인간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었다고 하는데, 이를 증명하기 위한 논리가 매우 특이하다. 만일 신이 인간에게 자유를 주지 않았다면 인간의 모든 행위는 필연에 의한 것이고, 그렇다면 인간이 신에게 보이는 충성과 신의는 필연의 결과일 뿐이니, 그들은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필연을 섬기는 셈이다. 신은 이로부터 아무 기쁨을 얻을 수 없으므로 신이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했다는 것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신은 주어진 명령을 무조건 수행하도록 인간을 프로그램하지 않았다. 과연 로봇에 이런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하고 바람직한가? 신은 인간을 사랑해 그렇게 했는데, 로봇은 인간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인가? 신처럼 인간이 로봇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가? 인간이 만들려고 하는 로봇이 점점 인간과 비슷해질수록 공학적 문제보다는 인간학적 주제가 뜨거운 쟁점이 된다. 실낙원은 이 같은 주제에 대해 깊은 성찰과 토론을 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기 때문에 인공지능과 로봇에 관심 있는 모든 이에게 필독서이다.

이대성 연세대 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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