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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의원님께 권하는 슬기로운 쇼핑생활

문수정 산업부 차장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모두 스스로 해내기는 쉽지 않다. 식기세척기의 등장으로 매일 저녁 요동치던 마음에 평화를 얻은 사람도 있고, 물걸레 청소기 덕에 관절염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난 이도 있다. 집안일에 있어서 외주는 필수불가결하다. 세탁기, 빨래건조기, 에어프라이어, 가정간편식, 배달음식 등은 집안일의 한 영역을 톡톡히 담당해주고 있다.

집안일의 외주는 삶의 질을 높여주지만 부작용도 동반한다. ‘집안일’의 난이도에 대한 오해, 가치에 대한 평가절하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해주는데 뭐가 힘들다고 그러느냐”는 망언이 대표적이다. 이런 망언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은 두 부류다. 집안일을 제대로 해보지 않아서 세탁기 사용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한겨울에도 소쿠리에 빨랫감을 가득 담아 개천에서 새빨갛게 언 손으로 빨래를 했던 오랜 경험이 있거나. 전자든 후자든 상대를 화나게 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경험이 없으면서 알은체하는 것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려운 경험에 비춰 상대를 폄하하는 것도 잘못됐다. 그런 망언을 일삼는 이들에게는 빨랫감과 함께 ‘세탁기 사용 안내서’를 조용히 안겨줘야 한다. 직접 해 봐야 그런 말을 안 할 테니까.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집안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 것은 해로운 일이다. 해보지 않으면 어려운 것도 모르니 그 일을 하는 이의 노동력과 가치를 우습게 여기기 십상이다.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다 보니 이해력이 떨어진다. 몸으로 부딪쳐야 알 수 있는 일을 머리로만 가늠하니 헛다리를 짚을 때가 많다. 최근 이슈가 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법 개정안과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보면서 유구한 역사의 ‘빨래 망언’이 떠올랐다. 상생협력법 개정안은 새벽 배송과 온라인 쇼핑 거래 품목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월 2회 복합쇼핑몰 의무 휴업을 골자로 한다.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에 대한 보호와 상생을 목적으로 한다지만, ‘헛다리를 짚고 있다’는 생각만 굳건해진다.

2021년 대한민국 유통 현장은 ‘대기업 대 중소기업’ ‘전통시장 대 대형마트’ ‘제조사 대 판매사’ ‘유통업체 대 소비자’ 같은 방식으로 양분할 수 없다. 이분법적 사고로 접근하다 보면 곳곳에서 ‘예외’를 만나게 된다. 스타필드가 쉬면 푸드코트에 입점한 만둣집도 쉬어야 한다. 식료품 배송이 안 되면 농민들은 판로가 좁아진다. 유통업계 자체 브랜드(PB) 상품은 중소기업에서 만든다. 코로나19에도 대형마트에는 휴무 전날인 토요일에 사람들로 북적인다. 쇼핑몰도, 백화점도, 마트도 소비자들에게 ‘문화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유통 환경은 집안일의 외주와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코로나19 시대에 온라인 쇼핑의 편익을 저해하는 일을 가만히 받아들일 소비자는 없다.

대체 왜 이런 시대에 동떨어진 법안이 나오는 걸까 생각해보면 ‘쇼핑을 안 해본 사람들이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시장·마트에서 장을 보고, 온라인 쇼핑몰의 핫딜을 기다리고, 복합쇼핑몰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본 경험이 있다면 만들 수 없는 법안이기 때문이다. 직접 겪어봤다면 빠르게 변하는 유통 시장에 규제 일변도의 법안을 들고 나올 순 없다.

빨래 망언을 하는 이들에게 빨랫감과 세탁기 매뉴얼을 안겨주는 기분으로, 국회의원들에게도 ‘슬기로운 쇼핑 생활’을 권하고 싶다.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해롭다. 온라인 쇼핑도 해보시고 마트에서 직접 장도 보시길 바란다. 선거철에 전통시장 방문하는 것처럼 말고, 일상의 업무로써 말이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문수정 산업부 차장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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