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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별의 순간

모규엽 사회부 차장


올해 초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별의 순간’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해석을 내놨다. ‘대권 도전의 순간’ ‘가장 빛나는 순간’ 등 여러 의견이 나왔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대학 시절 독문학을 전공했고, 독일 유학파 출신인 것을 감안하면 그는 독일어인 ‘Sternstunde’를 ‘별의 순간’이라고 말한 것 같다. Sternstunde는 Stern(별)과 Stunde(시간·순간)가 합쳐진 말이다. 케임브리지 독영사전은 ‘의미있는 일이 일어나는 시간’, 네이버 독한사전은 ‘운명적 시간, 결정적 순간’으로 해석했다.

무엇보다도 이 말은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때문에 유명해졌다. 바로 그의 저서 ‘광기와 우연의 역사’다. 이 책의 원제가 ‘Sternstunden der Menschheit’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인류의 별의 순간들’ 정도 되겠다. 이 책은 12개의 사람·사건을 다루고 있다. 키케로의 죽음, 동로마 제국의 종말, 워털루 전투, 남극 정복 등을 저자의 독특한 시각으로 서술했다.

다만 상당수가 비극이다. 동로마 제국은 누군가가 성의 작은 문 하나를 닫지 않아 멸망했고, 나폴레옹은 고지식한 부하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다. 남극 탐험에 나선 스콧은 결국 아문센에게 패했고, 태평양을 발견한 발보아는 피사로에게 죽었다. 우연과 운명에 어쩔 줄 모르는 인간 군상을 다룬 자연주의 사조와 가깝다.

다시 김 위원장으로 돌아가 보면 그는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별의 순간이 왔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별의 순간을 놓쳤다고 했다. 윤 총장에게는 결단의 순간이 다가왔고, 안 대표는 옛날에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하는 순간 모든 걸 놓쳤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렇다면 윤 총장은 별의 순간을 잡을 수 있을까. 아쉽게도 그가 ‘검찰주의자’로 계속 남는다면 이를 놓칠 것 같다. 윤 총장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 속에 한때 대권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렸다. 하지만 윤 총장이 지금껏 해온 행보를 보면 그는 검찰의 원죄를 스스로 풀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김학의 수사는 검찰의 원죄다. 이전부터 많은 국민이 검찰을 좋게 보지 않았지만 이 두 수사가 검찰 불신의 결정적 역할을 했다. 노 전 대통령 수사는 검찰의 강압·저인망식 수사의 대표적 사건이었고, 김학의 수사는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의 대표적 사례로 각인돼 있다. 검찰의 먼지떨이식 수사는 외부에 의해 조정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윤 총장은 제 식구 감싸기라는 원죄를 풀어야 했다. 영상 속의 남자를 김학의라고 부르지 못하고 무혐의 처리한 검사를 징계했어야 했다. 라임 사건 관련 ‘검사 술접대 의혹’에서 접대비 99만원이라는 ‘신공’을 펼친 검사를 감찰하거나 재조사를 지시해야 했다. 진정한 별이 되기 위해선 자신을 깨야 한다.

윤 총장과 동전의 양면이 된 추 전 장관도 사실 지난해 ‘별의 순간’이 왔다. 많은 국민이 원하는 검찰 개혁을 통해 일약 대선 주자로 나설 수 있었다. 그런데 포인트를 완전히 잘못 잡았다. 우격다짐으로 윤 총장 때리기에만 혈안이 된 사이 그 별의 순간이 사라진 것 같다. 차라리 그때 김학의 사건 재조사나 담당 검사 징계 회부 등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문제 해결을 통해 검찰 개혁을 했으면 별의 순간을 잡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한다.

사족으로 별의 순간을 처음 언급한 김 위원장도 현재 자신이 별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 바로 ‘킹메이커’다. 다만 과거의 기억과 악연에 휘말려 스스로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이 순간을 그냥 허비하는 것 같은 모습이 아쉽다.

모규엽 사회부 차장 hirt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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