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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용 목사의 ‘복음 설교’] 복음 안에 있는 헤세드

룻기 4장 13~22절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의 족보가 나온다. 그 족보에는 5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다말,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밧세바), 마리아이다. 이 다섯 명은 당시 유대 문화를 기준으로 보면 사회적 으로, 도덕적으로 매우 비천한 여인들에 속한다.

순서대로 살펴보면, 다말은 매춘부로 분장하여 시아버지와 동침하여 아이를 낳은 여자다. 라합은 유대인들이 상종하지 않는 이방 여인이며 기생이다. 룻 역시 모압 족속 여인이며 모압인들은 근친상간으로 이어진 족속이다.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는 다윗과 간통을 한 여인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인데 정식 혼인 전에 예수님을 잉태했다. 이는 당시 사회적 통념으로 보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사람들이다.

이 다섯 명의 여인은 룻기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족보에 모두 다 연관이 있다. 베레스는 다말이 시아버지와 관계해서 낳은 아들이다.(18절) 오벳은 보아스가 룻을 통해 낳은 자이다.(21절)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의 아들 다윗은 밧세바를 통해서 솔로몬을 낳는다.(22절) 그리고는 대를 이어서 결국에는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이 태어난다.

이것이 예수님의 족보다. 예수님은 요즘 말로 말해 금수저로 태어나지 않았다. 예수님의 조상들은 당시에 멸시받고, 천대받아서 인생의 가치를 발휘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하나님의 헤세드는 최악의 상황과 조건을 넘어서 일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놓치면 하나님의 헤세드를 모르는 것이며 모르기에 누릴 수 없다.

룻기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헤세드는 아주 보잘것없이 비참한 삶을 사는 한 여인 나오미에게서 시작한다. 의지할 남편도 아들도 없다. 곁에 있는 며느리는 이방 여인이다. 말 그대로 어느 것 하나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무것도 없다. 버틸 힘도 없다.

그런 여인의 삶에 하나님의 헤세드가 임한다. 그녀의 삶은 한 오라기의 실 마냥 끊어질 듯, 망가질 듯하다. 하지만 결코 망하지 않는다. 분명히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듯한데 회복되는 은혜, 그것이 하나님의 헤세드이다.

룻기의 결론은 인간의 연약함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영원한 안식처인 집을, 우리를 위하여 완성하는 이야기이다. 사실 룻기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룻기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바로 사무엘서다. 룻기의 마지막에는 다윗의 탄생을 예고한다. 그리고 사무엘상으로 들어가면 그 이방 여인 룻에게서 이어진 다윗의 집을 세우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우리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이야기는 우리 연약함으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못나고 비천하여 어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은 나의 삶을 끌고 가실 것이다. 나의 모자람과 완고함보다 더욱 강력한 하나님의 고집과 의지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고, 결국에는 그리스도의 의로 우리의 인생을 멋지게 빚어내실 것이다.

나오미는 두 이름을 가진 여자였다. 기쁨이라는 뜻의 이름 ‘나오미’와 고통이라는 뜻을 가진 ‘마라’다. 그것이 우리의 이름이다. 우리의 삶은 항상 나오미와 마라가 같이 있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헤세드가 그 고통을 뚫고 아름다운 희락(나오미)의 인생으로 우리를 완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의 결국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이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나 자신에게서 하나님으로 향하자. 하늘의 꿈을 가슴에 담을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일하시는 것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복음 안에 있는 헤세드이다.

(미국 버지니아 한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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