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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86세대의 진보

남도영 편집국 부국장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경선에 나선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경쟁력을 “진보의 가치를 대표하는 주자”라고 표현했다. 이 말은 논쟁적인 물음을 내포하고 있다. 우 의원은 진보의 가치를 대표하는가, 더 나아가 우 의원을 포함한 ‘86세대’는 진보의 가치를 대변하고 있느냐는 물음이다. 경선 경쟁자인 박영선 전 장관은 우 의원 발언 며칠 뒤 “과연 시대가 부르는 사람인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1980, 90년대 민주화와 진보의 아이콘이었던 86세대는 현재 응원보다 비판을 더 많이 받는 처지가 됐다. 대중의 인식과 86세대 스스로 인식 사이의 괴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학생운동을 했던 30대 젊은 정치인을 의미했던 386세대는 시간이 흐르며 486세대, 586세대로 이름을 바꿨다. 지금은 586세대에서 50대라는 세대를 뺀 ‘86세대’라는 말이 더 자주 쓰인다. 어떤 평론가는 민주당 집권세력에 포함된 엘리트 정치그룹이라는 의미로 ‘집권 86세대’라는 비판적 용어를 사용한다. 한때 386 정치인과 386세대는 같은 의미로 이해됐다. 386 정치인들은 386세대의 가치를 대표했고 386세대는 386 정치인을 자신들의 대표로 인정했다. 그러나 586 정치인들은 같은 세대로부터 점점 분리되고 있다. 86세대가 자신들의 세대와 멀어지고 다른 세대로부터 비판받기 시작한 것은 시대정신과 분리됐기 때문이다. 86세대는 독재정권과 반공 이데올로기에 맞선 세대다. 독재 타도와 반공 이데올로기 극복은 80년대의 진보였고 시대정신이었다.

현시점의 시대정신을 몇 개의 단어로 규정하긴 힘들다. 다만 많은 전문가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빈부격차의 심화와 계급 분화의 고착, 노동 형태의 변화, 제어되지 않는 기술독점기업들의 전횡, 불공정의 심화, 전체주의로 나아가는 포퓰리즘의 확대, 진영논리의 심화와 같은 문제들을 현시대의 과제로 꼽는다. 86세대는 이런 과제들에 답하며 ‘더 나은 진보’를 보여주지 못했다. 대신 보수정당·보수언론과의 격렬한 전투의 선봉에 섰고 갈등의 조정자라는 정치 본연의 역할 대신 갈등의 확산에 기여한다는 이미지가 생성됐다. 미국 대신 중국과의 연대에 주력하고 객관성을 잃은 북한과의 연대에 주력하는 이미지도 덧붙여졌다. 86세대가 세대의 대표성을 잃어가기 시작한 것은 결국 시대적 과제와 멀어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책임을 86세대에게만 묻는 것은 과한 논리다. 일부 학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의도적인 이미지 조작의 결과일 수도 있다. ‘조국의 문제’를 86세대 전체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도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386세대, 86세대와 같은 세대론은 흥미로운 주제이지만 과학적인 분석 틀은 아니다.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규정하는 설명이 비과학적인 것처럼 386이라는 세대론으로 학생운동 출신 정치인을 일괄적으로 재단하는 것도 불가능한 시도다. 현실적으로 86세대와 경쟁하는 다른 정치그룹이 눈에 띄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86세대 비판론이 설득력이 있는 것은 많은 기대와 보상을 얻었던 86세대가 기대에 걸맞은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86세대는 지금 정치의 전면에 서 있다. 우 의원은 서울시장에 도전 중이고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잿빛 전망 가득한 남북문제에 매달려 있다. 최근 ‘노무현이 옳았다’는 책을 펴낸 이광재 의원은 한국 사회의 미래 담론을 가다듬고 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외곽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고 김경수 경남지사는 지방 행정을 책임지고 있다. 그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성과를 내고 그 성과로 동 세대를 설득해 86세대의 더 나은 진보를 보여줄 수 있을까. 어려운 길이다.

남도영 편집국 부국장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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