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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 情談] 간장과 간장맛소스

황교익 (칼럼니스트)


인류는 지구 출현 이래 가장 안전한 식생활을 하고 있다. 과학자의 연구와 국가의 관리 덕분이다. 산분해간장의 위해성은 걱정할 것이 없다. 산분해간장 제조 과정에서 염산과 양잿물이 들어가도 최종 결과물은 안전하다. 발암 가능 물질로 알려진 ‘3-모노클로로프로판디올(3-MCPD)’ 기준치도 과학자와 국가가 알아서 잘 관리를 할 것이다. 소비자는 과학자와 국가의 판단을 믿으면 된다. 그들이 가끔 실수를 해도 아예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는 바르지 않다.

국가는 제외하고, 과학자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과학자가 식품의 명칭까지 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식품의 명칭은 그 식품이 소비되는 사회의 문화적 전통과 소비자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식품의 명칭에 자본이 개입한다. 그래서 식품의 명칭에 대한 논쟁은 소비자와 자본, 그리고 국가가 감당해야 하는 문제다.

간장은 우리 민족이 콩을 발효해 얻은 액체에 붙인 이름이다. 조선시대 문헌에 처음 등장하나 간장이라는 식품이 그 이전부터 있었고 그 이름의 역사 역시 길다. 1년 된 간장은 햇간장이고, 5년을 묵히면 진간장이다. 햇간장은 맑아서 청장, 국에 어울려 국간장이라고도 한다. 더 오래 묵힌 진간장은 씨간장이 되고, 이를 햇간장에 첨가해 집안의 간장 맛을 물린다. 해산물이 들어가면 어간장이고, 고기 맛을 더하면 육간장이며, 여러 재료로 맛을 더하면 맛간장이다. 간장은 간장이라는 식품 그 자체만을 뜻하지 않는다. 간장이라는 말에는 한반도에서 콩 발효 액체를 일상 음식으로 먹어온 사람들의 정서와 정신이 담겨 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콩 단백질을 산분해해 간장 비슷한 액체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산분해간장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자본이다. 사람들이 간장이라는 이름의 액체를 먹고 있어 간장이란 이름으로 판매를 하는 게 유리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의견은 묻지 않았다.

만약에 간장이란 이름이 없었으면 콩 단백질을 산분해해 얻은 아미노산액은 다른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감칠맛이 난다고 감칠맛액이라 했을 수도 있다. 산분해간장이라는 작명은 전적으로 콩 발효 액체를 간장이라고 불러온 사람들의 정서와 정신을 차용한 것이다. 자본에 의해 차용당한 간장에 대한 정서와 정신은 깨지고 비틀려 마침내 카오스의 상태로 이르렀다. 5년은 묵혀야 붙였던 진간장이라는 명칭을 산분해간장에 양조간장을 더한 혼합간장이 가져갔고 그 혼합간장의 병에는 ‘발효’가 붙었다.

산분해 아미노산액과 간장은 콩 단백질을 원료로 하고 그 결과물이 비슷하다 해도 과정이 전혀 다르다. 한반도 사람들이 오랜 시간 간장이라는 명칭에 응집시켜온 정서와 정신은 산분해로 얻은 간장 비슷한 액체에는 없다. 간장이라 부르는 것은 무리다. 비발효간장이라고 하자는 주장도 있는데, 이 역시 간장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이니 적합하지 않다. 합리적으로 이름을 붙이자면, 간장맛소스라고 해야 한다. 바나나가 들어 있지 않았음에도 바나나 맛이 나는 식품에 ‘바나나맛 ○○’이라고 붙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산분해 아미노산액에 여러 이점이 있다. 무엇보다 값이 싸며 안전성이 확보돼 있다. 시장에서 내몰아야 한다는 주장은 과도하다. 이름만 손보면 된다. 식품공전에서 한식간장과 양조간장은 그냥 두어도 된다. 산분해간장과 혼합간장은 개명해야 한다. 산분해간장은 간장맛소스, 혼합간장은 간장맛소스가 첨가된 양조간장이니 조미간장이 적합하다. 소량의 양조간장이 들어간 간장맛소스를 조미간장이라 할 수는 없으니 양조간장이 적어도 70% 이상은 들어가야 조미간장이라 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공자는 정치를 맡기면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름을 바로잡겠다(正名)”고 했다. 이름에 부합한 실제여야 그 이름이 성립한다. 실제에 맞는 명칭을 사용해야 세상이 바로잡힌다. 간장 논쟁도 다르지 않다. 이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황교익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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