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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풍경화] 겨울을 견딘 꽃봉오리처럼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이제 헤어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벌써 2월이에요. 요즘 낮 기온은 영상 6~7도쯤 되고요, 최저기온이 영상에 닿는 날도 있어요. 다음 주는 더 따뜻하다 하더군요. 안녕하세요. 저는 편의점 호빵기입니다. 맞아요, 매년 10월에 나타났다 2월쯤 사라지는 바로 그 녀석입니다. 올해는 예년보다 조금 빨리 작별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황량한 겨울이었어요. 예전에는 제가 품고 있던 호빵을 예닐곱 개쯤 구입해 사무실 식구들에게 따끈따끈 하나씩 나눠주던 풍경이 있었는데요, 올겨울엔 그런 것이 사라졌지요. 5명 이상 사적인 모임마저 제한받았던, 생전 처음 경험하는 겨울이었으니까요. 단팥, 야채, 피자 같은 전통적인 호빵은 물론이고 씨앗, 잡채, 고기만두, 초콜릿까지 호빵에도 종류가 아주 많았는데 올겨울엔 그런 풍성함도 부족했고요, 호빵을 사면 음료수를 끼워주던 행사도 살짝 소홀했어요. 여러모로 쓸쓸한 겨울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겨우내 제 얼굴을 닦고 물통을 갈며 청결하게 관리하느라 고생하신 편의점 점주님과 아르바이트생 여러분께 감사 인사드려요.

계절을 마감하면 제가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다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프랜차이즈 편의점의 경우에는 본사 창고로 간답니다. 겨우내 흩어졌던 친구들이 다시 그곳에 집결해 신체검사를 받고 일괄 소독한 다음, 단정히 상자에 들어가 다음 시즌을 기다립니다. 창고 안에서 우리는 도란도란 겨우내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멀리 섬마을 편의점으로 배치됐던 친구는 겨울 바다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낭만 가득한 목소리로 회상하고요, 공장지대 편의점으로 달려갔던 친구는 근로자들의 땀 냄새 기름 냄새를 은근히 추억하며 말할 거예요. 지하철 역사 입구에 서 있던 호빵기 녀석은 출퇴근 시간 밀려오던 인파의 웅장한 광경을 허풍스레 들려주겠죠. 그래도 올겨울 공통된 추억은 역시 코로나19일 거예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올해 10월, 제가 다시 편의점에 등장할 때에는 지난겨울과는 다른 삶이 펼쳐졌으면 좋겠어요. 모든 국민이 백신을 맞아 ‘집단면역’이라던가 하는 것이 형성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고, 친구들끼리 우르르 몰려 노래방에서 어울리고, 출출한 오후 시간에 호빵 한 묶음 사 들고 와 “자, 따뜻하게 하나씩 골라봐”하면서 검은 봉지를 달랑달랑 흔들 부장님 미소도 보고 싶어요. 내년에 저는 학교 앞 편의점에 배치되고 싶군요. 교실은 떠들썩하고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뛰어놀겠죠.

곧 매화, 목련, 개나리, 진달래가 차례대로 꽃을 피울 거예요. 이른 봄 피는 꽃은 늦가을에 이미 꽃봉오리를 만들어 놓고 겨우내 혹독한 추위를 견뎌낸 다음 가장 먼저 봄을 알린다고 하지요. 겨울이 추운 만큼 꽃도 아름답다고 해요. 지금 겨울을 걷고 있는 당신의 마음에도 몽글몽글 꽃봉오리 하나가 자라나고 있을 거예요. 어느 노랫말처럼 “이 어둠 걷히고 내일이 오면 햇살처럼 큰 웃음으로” 다시 만나요. 당신 때문에 이번 겨울 행복했어요. 고맙습니다.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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