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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 안전가옥엔 미래가 없다

박재완 (성균관대 명예교수·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지난해 우리 경제의 성적표가 나왔다. 코로나19 여파로 22년 만에 역성장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하면 선방했다. 봉쇄 없이 거리두기로 버텼고, 제조업과 수출 위주 경제라 타격이 덜했다. 예컨대 지구촌 소비자들이 여행이나 외식할 돈으로 PC를 바꾼 덕이다. 산업 구조가 우리와 비슷한 대만은 3%나 성장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까지 우리 성장률이 신흥국은 물론 선진국 평균에도 못 미칠 것으로 내다본다. 올해야 지난해 선전한 기저효과 때문이라 해도 내년 성장률(2.9%)마저 세계 평균(4.2%)에 뒤지는 건 문제다. 주요국보다 백신 보급이 늦어 경제 활동 정상화에도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백신이 보급돼도 한국의 성장률 상승은 미미할 거로 미국 씨티그룹 연구소는 추정한다. 확진자가 적어 경제 정상화 효과가 크지 않고, 집단면역이 이뤄지면 약진할 관광산업 등의 주된 수혜자가 아니라서 그렇다. 서비스업이 취약하고 여행수지도 적자라 내수보다 해외 소비가 더 활성화될 수 있다.

내리막인 성장률이 반등하려면 경제의 생산성과 역동성이 올라가야 한다. 우리 생산성은 최우등생 룩셈부르크의 40%에 불과하다. 전문 인력이 모자란 데다 얽히고설킨 규제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된 서비스업 탓이다. 급진전하는 비대면 경제에 발맞춰 사람을 키우고 일하는 방식도 바꿔야 한다. 경영자문사 매킨지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 20~25배나 빨라졌다. 매킨지는 코로나가 진정돼도 세계 근로자의 20% 이상이 원격근무할 것으로 예상한다.

최근 거론되는 영업손실 보상과 협력이익 공유 등은 경제의 안정에 방점을 둔 일종의 보험 제도다. 취약층을 돕는 취지야 좋지만 보험의 전제인 옥석 가리기가 어려워 도덕적 해이를 낳고 경제의 역동성을 떨어뜨린다. 막대한 재정 지출로 늘어날 유동성이 자산 거품을 키울까도 걱정이다. 자칫 확장 정책을 써도 성장은 지지부진한 채 정부 빚만 쌓이는 ‘일본화’의 위험도 있다.

우리의 디지털 기반과 혁신 역량은 아직 우수하다(2020년 국제경영개발원 디지털 경쟁력 8위, 블룸버그혁신지수 2위, 유럽혁신지수 8년 연속 1위). 그러나 곳곳에 경고음이 들린다. 한국의 사회·제도 혁신 잠재력은 주요국 평균에 그친다(세계경제포럼). 한국 근로자가 인공지능이나 자동화로 대체될 위험은 주요국 중 가장 높다(경영자문사 올리버 와이먼). 숙련도가 어중간한 데다 로봇처럼 시키는 일은 잘해도 시키지 않으면 나서길 꺼리는 탓이다.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학력이 세계 최상위인 한국 청년의 실제 역량은 중위권에도 미달한다. 외화내빈이다. 일하는 데 필요한 역량과 실제 역량의 괴리가 가장 큰 데도 일하면서 배우는 건 꼴찌 수준이다. 직무의 디지털 강도가 낮고, 자동화 추세에도 살아남으려면 많은 근로자가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뿐 아니다. 한국은 디지털 수준이 앞서지만 그 진화 속도는 더딘 나라로 분류되며(미국 플레처 국제대학원), 원격근무 잠재력의 세대 차이가 가장 크다(IMF). 15세 청소년의 교사 지망률은 주요국 중 으뜸인데, 기술자 지망률은 바닥권이다(미주개발은행). 청년에게 공무원은 선망의 대상이다. 지난달 OECD 보고서도 예사롭지 않다. 한국은 디지털 인프라 강국이지만 빅데이터나 클라우드 컴퓨팅 등 첨단기술 실용화는 최하위권이다. 전자상거래 참여 등 디지털 역량의 세대 격차가 가장 크며, 교사들의 디지털 활용도도 낮은 편이다.

상의하달과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조직 문화도 극복해야 한다. 우린 참신한 대안 대신 그저 선례를 따르며 어지간한 지시엔 토 달지 않는다. 돌발 상황에 부닥치면 스스로 헤쳐나가기보다 보고와 면피에 바쁘며, 눈치껏 안전가옥에 머무른다. 예산 핑계로 수감자에게 마스크조차 주지 않는다. 군사 문화와 대량생산 중심 제조업의 유산이자 이만큼이나마 살게 된 동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대론 4차 산업혁명의 거센 파고를 넘기 어렵다.

미국 ‘민권운동의 할머니’ 셉티마 클라크는 “혼돈은 기막힌 발상을 끌어내는 선물”이라고 했다. 끔찍했던 2차 대전도 레이더와 컴퓨터, 항생제와 연고, 티슈와 볼펜 등 걸출한 발명을 낳았다. 세상은 코로나19 전과 후로 나뉠 게 확실하다. 자율과 책임, 모험과 도전이 절실하다. 안락한 보금자리를 박차고 나설 때가 됐다.

박재완 (성균관대 명예교수·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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