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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새로움은 어떻게 발견되는가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마음먹어도 되지 않는 일들이 현실에는 분명히 있다. 환경과 시스템이 바뀌지 않은 채 내 마음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질 거라고, 신비로운 영역처럼 마음을 취급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그런데 새로운 것을 바깥이 아닌 내 마음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은 좋아한다. 내 안에서 찾은 새로움 덕분에 행복감에 젖을 수도 있는 건 사실 아닌가.

책을 만드는 직업인으로서 매일 출간되는 세상의 모든 새 책에 설렌다. 당대 독자들의 욕구를 읽어내고 함께 공유할 삶에 대한 질문과 모색하는 답들을 담은 책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날들을 열어줄 것만 같다. 흥미롭게도 신간 중에서 상당히 많은 종수의 주제가 몇 년 전에 출간된 책들과 유사하다. 삶의 항구적 가치,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때와 지금의 변화 속에서도 잘 사는 삶에 대한 화두는 같다. 그러나 주제가 같다고 같은 책은 아닐 것이다. 새로움은 오래된 것에서 재발견되고, 내 안에서 잊혔던 무엇인가가 환기돼 각성될 때 더 신선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니까.

“예사로운 아름다움도 어느 시기와 만나면 깜짝 놀랄 빼어남으로 빛날 수 있는 신기한 발견을 올해의 행운으로 꼽으며, 안녕.” 지난달에 10주기를 맞은 박완서 작가는 볼 일이 있어 설악산에 들렀다가 뜻밖의 단풍을 마주치고 짧은 절정의 순간과 만난 기념을 이렇게 표현했다. 최근의 기억이 형편없이 희미해지는 반면 오래된 기억은 변함없이 생생하다는 게 놀랍다는 고백에 이어지는 글이었다. 그 단풍은 단순히 단풍이 아니고, 고향 마을의 청결한 공기와 낮고 부드러운 능선, 그 위에 머물러 있던 몇 송이구름의 짧고 찬란한 연소의 순간인 붉은 노을을 생생하게 되살린 것이었다고. 어린 시절에 느낀 강렬한 빛깔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만난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남기고 간 축복이 아니겠냐고 작가는 되물었다.

지금 서점가에는 소설과 에세이 분야 베스트셀러에 박완서 작가의 몇몇 책들이 올라 있다. 추모의 뜻을 담아 여러 출판사에서 각각 새롭게 편집해 출간한 소설과 에세이가 시간을 건너뛰어 많은 독자에게 읽히고 있다. 과거의 풍속도, 버스와 택시, 문단 풍경과 살림살이 등의 세밀한 묘사와 삶의 세속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는 그 과거를 경험한 세대든 경험하지 못한 세대든 간에 아주 새로운 이야기의 효과를 가져온 듯하다. 이미 읽은 기시감이 있지만 통찰력 있는 글을 다시 읽는 즐거움은 상당하다.

“여학교 시절을 보낸, 지금도 변하지 않은 옛집과 그 앞을 지나는 여학생들의 모습은 문득 나에게 시간관념의 혼란을 가져왔다. 울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실제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조용히 흐느끼고 싶은 잔잔한 서러움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나는 결국 울지 못했다.”

1970년대 말, 길을 잘못 들어선 택시가 우연히 옛집 앞을 지나갈 때 쉰 살 가까운 작가는 울고 싶은 충동을 이렇게 묘사했다. 시간관념의 혼란을 느낄 정도로 생생한 기억들, 여학교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며 잔잔한 서러움을 느끼는 그 순간이 얼마나 새로운가. 분명히 자신이 겪었으나 이제는 그 시절로부터 너무 멀리 왔다는 작가의 감상은 읽는 사람에게 묵었던 기억마저 끄집어내게 한다. 해질녘까지 동분서주하다가 언젠가 따뜻한 마음으로 걸었던 골목길을 마주친 복잡한 심사, 무엇이 이토록 나를 헤매고 헛발질을 하게 만드는가 같은 현실 자각으로 한숨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다.

마음 한가운데에서 소용돌이치는 기억들을 되살리며 나는 잘 살고 있는지, 묵은 각질을 덮어쓴 채 관행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새롭게 읽는 박완서 작가의 작품은 삶의 기갈증을 오래전에 쓰인 글에서 발견하고 삶의 영속성에 대한 숙연한 감정과 앞으로도 유효한 질문에 대해 공감하게 만든다. 새로움은 내 안에서 발견된다. 낡은 것은 성찰 없는 생각에서 비롯되고.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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