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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 오래 매달리기

심희정 온라인뉴스부 기자


올해 내 목표는 턱걸이 세 개 하기다. 언제 다시 헬스장이 문 닫을지 모르니 집에 홈트(홈트레이닝) 공간을 만들었다. 일단 문틀에 철봉을 설치했고, 반동으로 몸을 띄워주는 고무밴드도 샀다. 팔 근육만으로 되는 건 아니라고 해서 등 근육을 기르기 위한 체조용 링 기구도 마련했다. 준비는 거의 완벽했다.

하지만 실천이라는 건 유통기한이 짧기 마련이라서 1월을 지내며 철봉에 매달리는 횟수는 점점 줄었다. 이제는 사나흘에 겨우 손을 뻗어 철봉을 움켜쥐는 정도다. 철봉에 매달리자마자 전해지는 통증으로 ‘아, 내 어깨가 여기에 있었구나’를 알게 된다. 매달리는 것만으로도 진이 다 빠져버려 시도는 늘 매달리기에서 그친다. 팔꿈치를 굽혀 몸을 들어 올리는 건 여전히 불가능의 영역이다. 지금껏 제대로 된 턱걸이 한 번 성공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벌써 1월이 지났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 내 근력은 늘었을까? 줄지 않았으면 다행이다.

연초에는 으레 올해의 목표나 계획 같은 걸 묻고 답하게 된다. 질문을 받은 이들은 마음속에 가만히 품어 왔던 소망들을 기꺼이 열어 보여준다. 마치 당장이라도 꿈을 이뤄낸 것만 같은 설레는 표정과 함께. 주변 사람들은 자격증 따기, 출판하기, 취업하기, 퇴사하기 등을 얘기했다. 소망을 말하는 목소리는 온기를 담고 있는지 그 순간엔 주변 온도가 살짝 올라가는 것 같은 달뜬 기분도 들었다. 다른 이의 꿈을 응원하면서 내 꿈도 단단하게 다졌다.

이런 마음이 열두 달 내내 이어지면 좋겠지만, 날이 지날수록 우리는 조금씩 실망하거나 좌절하거나 자책한다. 벌써 2월인데 연초에 호기롭게 세운 다짐은 어디로 갔을까 괴롭기만 하다. 2월은 또 왜 28일밖에 없는지. 누구는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는데 난 아직도 그대로라며 조용히 목표를 거둬들이기도 한다. 시간이 가는 것을 설레는 마음으로 마주하기보단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운 마음으로 뒷걸음질치는 것 같기도 하다.

올해 처음 본 영화가 ‘소울’인 것은 그래서 어쩌면 다행이다. 평생 그리던 꿈을 눈앞에 둔 주인공 ‘조’가 사고로 ‘태어나기 전 세상’에 떨어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주인공의 원대한 목표에 주목하지 않는다. 반짝이는 순간보다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조명한다.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밟아 왔던 낙엽과 햇살과 그림자들을 보여준다. 순간들이 모여 내가 된다는 오랜 격언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목표들이 홍수를 이뤘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1월 말에 보니 더 뭉클했다.

그러니까 목표를 이루더라도, 이루지 못하더라도 하루하루를 살자는 거다. 턱걸이 3개를 하지 못해도 연말의 나는 어쩌면 오래 매달리는 사람이 돼 있을지 모른다. 고등학교 체력검정 때 1초도 매달려 있지 못했던 내가, 이제는 30초 매달리는 사람이 됐다면 이거야말로 엄청난 성장이다. 오래 매달리면서 손바닥에 굳은살이 생기고, 어깨가 뻐근하지 않은 순간이 오면 언젠가는 철봉 위에 턱을 걸칠 수 있을지 모른다.

2월에 목표를 하향 조정하는 건 조금 비겁한 일일지 몰라도 좌절하는 것보다 용기 있는 결정일 수 있다. 아니면 설 명절에 떡국을 먹으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목표를 조정해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 그럼 벌써 2월이라고 시무룩해하는 마음의 자리에 다시 불꽃이 피어날 거다. 설을 맞아 올해 목표를 묻는 부모님에게도 쭈뼛거리지 않고 힘차게 답할 수 있다. 1분 매달리기와 턱걸이 1개를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꽤 멋지다.

가끔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건 필요할지 모른다. 꼭 이뤄야 하는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리는 것도 때로는 중요하다. 그렇지만 늘 그렇게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나에게라도 숨 쉴 공간을 줘야 올해도 무사히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너무 몰아세우지 말고, 너무 재촉하지 않으면서 모두가 뜻하는 바를 이뤘으면 좋겠다.

심희정 온라인뉴스부 기자 simc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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