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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 사법의 정치화, 누가 부추기나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 사회학과


작년 12월 24일 법원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처분 효력을 정지시켰다. 법무부 징계 절차에 명백한 결함이 있었고,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윤 총장에게 발생했으니 중지함이 옳다고 봤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바로 다음 날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대한민국이 사법의 과잉 지배를 받고 있다는 국민의 우려가 커졌다.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가 위험 수위를 넘었다는 탄식이 들린다.’ 이것이 신호였을까. 지난 4일 법관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신호를 누구보다 신속히 감지한 것은 사법 개혁의 아이콘 이탄희 민주당 의원이었다. 사법 농단을 까발리고 법관 탄핵을 기치로 국회에 입성했지만 초선의 한계는 명확했다. 지도부와 중진들이 ‘사법의 정치화’로 분위기를 띄우자 기민하게 움직였다. 대표 발의한 ‘세월호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됐고, 잔뜩 고무된 세월호 가족들이 사법부 규탄 성명을 내자 즉각 법관 탄핵의 소명을 소환했다.

이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에 대해 사법부의 철퇴가 내려지자 거대 여당은 멘붕에 빠졌다. 분노와 탄식이 나왔다. ‘검찰과 사법부의 유착’ ‘왜 십자가를 지웠나’ ‘잔인하다’…. 정 교수가 법정 구속되기 하루 전 이탄희 의원은 임성근, 이동근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을 공론화했다. 지독하게 드라마 같은 전개로 이뤄진 이 모두가 사법의 정치화와 관련해 법원을 겨냥해 벌어진 일들이다. 12월의 드라마,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2017년 사법 농단은 삼권분립과 헌정질서를 뒤흔든 패륜이었다. 법원행정처의 판사 사찰과 회유, 재판 거래와 개입, 미증유의 사법 부패가 민주주의를 위협했다. 정의와 상식의 최후 보루가 거꾸로 불의와 무도의 진원지가 됐다. 이탄희 의원의 ‘최초 저항’은 희망의 불씨였다. 당시 농단의 중심에 있었던 양승태 대법원장과 임종헌 행정처 차장이 구속되고, 의혹에 휩싸인 법관들은 대거 법정에 섰다. 곧 배신의 시간이 닥쳤다. 줄줄이 무죄 판결을 받거나 1심 판결이 한없이 늘어졌다. 사법 불신은 되레 커졌다. 입법부의 사법부 견제 시간이 왔다. 국회의원 161명이 발의한 헌정 사상 최초의 법관 탄핵소추.

이제 정의가 실현됐나.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명한다면? 사법의 정치화 신호가 마음에 걸린다. 왜 사법부 견제는 작년 2월 임 부장판사의 무죄 판결 이후 즉각 발동되지 않았나. 왜 이 의원은 정의의 칼을 10개월이나 아꼈나. 과연 최적의 시기는 정답이 없는 걸까. 의문이 꼬리를 무는 탓은 ‘헌재의 시간’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탄핵이 가능한 20여일 안에 최종 결정은 사실상 어렵다는 게 법조계 중론 아닌가. 시간에 쫓기니 국회 법사위 회부도 당사자 소명도 생략했다. 완행열차가 급행열차로 둔갑했다. 혹시 헌재 견제도 시작된 건가. 왜 이렇게 압박하나.

여당 내 ‘반란’은 또 하나의 문을 열려 했다. 중진 정성호 의원은 사법의 정치화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여러 중진 의원이 공감했다. 사법의 정치화의 주체가 법관이 아니라 탄핵을 추진하는 집권 여당이 될 수 있다는 경고였다. 친문 팬덤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좌표 찍기와 문자 폭탄을 퍼부었다. 이내 반란은 진압되고, 당의 기강이 곧추섰다. 양심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과연 법관 탄핵은 정당했을까.

께름칙하다. 검찰 개혁을 앞세워 칼춤을 추다 결국 명분도 국민 신뢰도 잃지 않았나. 검찰의 정치화를 맹폭하다 결국 검찰의 정치화를 부추긴 건 아닌가. 사법 농단의 반헌법 행위에 철퇴를 내렸지만 이게 과연 정의인지 헛갈린다. 정의라면 왜 사법 수장의 새빨간 거짓말에 침묵하나. 이 역시 척결해야 할 사법의 정치화 아닌가.

윤 총장 징계 절차의 심각한 결함을 알리고, 조 전 장관 일가의 입시 비리에 경종을 울린 사법부의 판단은 정의와 양심에 따른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허위 인턴 확인서를 써주고도 가책 하나 없는 무도한 정치인에 대한 유죄 판결도 국민 눈높이에 맞는 사법부의 책무 이행이다. 이걸 어떻게 사법의 정치화라 하나. 분명 법원은 국민의 것이다. 이 대원칙을 사법부는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한다. 법리와 건전한 ‘경험칙’에 충실한 판결로 오해를 불식시켜야 한다. 오해가 풀릴 때 국민은 엄중히 물을 것이다. 누가 사법의 정치화를 부추기는가.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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