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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알코올 적어도 ‘술은 술’… 2030 女 겨냥 음주 마케팅 심하다

[2021 음주 폐해 리포트] ② 무알코올, 저도주의 공세

일반 용기에 담긴 무알코올 맥주
톡 쏘는 탄산맛·거품·목넘김 흡사
청소년들에 음주 호기심 부추겨
女 월간 음주율 매년 꾸준히 상승

서울 시내 한 마트 주류 코너에 각양각색의 저도주들이 진열돼 있다. 알코올 도수가 낮다 하더라도 방심하고 계속 마시다가는 과음으로 이어져 건강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직장인 신모(32·여)씨는 1주일에 한두 번 친구들과 온라인으로 만나 술 마시며 수다떠는 ‘랜선 음주’를 즐긴다. 코로나19로 바깥 술집에서 다같이 만나기는 꺼림칙해서다. 각자 비교적 순한 술을 마트나 배달 서비스를 통해 구입해서 자기 만의 공간에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보며 마신다.

홈술·혼술 트렌드와 맞물려 무알코올 맥주 혹은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 소비가 늘고 있다. 젊은 여성들을 겨냥한 주류업계의 저도주 마케팅이 거세다. 무알코올을 표방한 일부 제품은 실제와 다른 꼼수 온라인 판촉으로 소비자 혼란을 부추기기도 한다.

최근 임신한 차모(33)씨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산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려다 깜짝 놀랐다. 당연히 알코올 함유량이 0%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0.5%가 들어 있었다. 차씨는 “조금이긴 하지만 혹여 아기에게 안 좋을까 찜찜해서 버렸다”고 했다.

일각에선 무알코올 맥주가 청소년들의 음주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해 잘못된 음주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저도주를 표방하는 술이라도 방심하고 계속 마시다가는 과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성인 남성보다 알코올에 취약한 여성과 청소년은 건강상 위해를 더 빨리, 많이 받을 수 있다.

8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주세법상 알코올 도수 1% 미만은 ‘비알코올’, 0%는 ‘무알코올’로 표시하도록 돼 있다. 알코올 함류량 1% 미만은 ‘성인용 음료(식품)’에 해당된다.

무알코올 맥주는 톡 쏘는 탄산맛부터 거품, 깔끔한 목넘김까지 일반 맥주와 흡사하다. 더구나 주류가 아닌 식품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간단한 성인인증만 마치면 미성년자도 쉽게 살 수 있다.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질환 전문 다사랑중앙병원 김석산 원장은 “무알코올 맥주라 할지라도 일반 맥주와 동일한 용기에 담겨있는데다 음주의 형태로 소비되기 때문에 청소년이 마셔서는 안된다”면서 “진짜 맥주를 마셔보고 싶은 충동을 유발하는 등 청소년들의 음주에 대한 호기심과 갈증, 모방 음주를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시중에 판매되는 무알코올 표방 맥주의 상당수는 소량의 알코올을 함유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2017년 식약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유통 무알코올 맥주 32종의 절반(16종)이 최대 1% 미만의 알코올을 함유하고 있었다. 적은 양이지만 알코올이 들어가 있음에도 알코올 제로(0)로 소비자를 호도하고 있는 셈이다. 일반 맥주의 알코올 함량이 5%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소량이라도 신체·정신건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저도주 출시도 건강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관계자는 “시중 유통 주류 제품의 알코올 도수를 조사한 결과 방송광고 규제 기준인 17도 아래로 낮아진 제품(16~16.9도)이 16개나 됐다”고 전했다.

저도주 마케팅은 젊은 여성의 음주에 대한 심리적 접근성을 낮추기 위한 전략이다. 이런 영향 등으로 여성의 음주량과 고위험 음주는 꾸준히 늘고 있다.

국민건강영양조사(만 19세 이상)에 따르면 여성의 월간 음주율(최근 1년간 월 1회 이상 음주)은 2016년 48.9%, 2017년 50.5%, 2018년 51.2%로 계속 올랐다. 월간 폭음률(최근 1년간 월 1회 이상 한번 술자리에서 남자 7잔, 여자 5잔 이상 음주)도 같은 기간 25.0%→25.0%→26.9%로 상승세를 보였다. 반면 남성의 월간 음주율과 월간 폭음률은 3년간 내림세였다.


특히 젊은 여성의 고위험 음주 증가가 눈에 띈다. 19~29세 남성의 월간 폭음률은 2005년 60.6%에서 2018년 46.8%로 13.8% 포인트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20대 여성의 월간 폭음률은 19.1% 포인트(2005년 30.7%→2018년 49.8%) 증가했다. 30대 남성의 월간 폭음률은 같은 기간 6.2% 포인트(62.1%→55.9%) 줄었는데, 30대 여성은 9.2% 포인트(17.9%→27.1%)늘었다.

이해국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알코올 도수 변화에 따른 20·30대 여성의 고위험 음주율을 분석했더니 저도주(2004년) 출시 이후 지속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저도주는 음주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에 전반적인 음주량을 늘리고 저도주라 해도 순간적인 혈중 알코올 농도는 얼마든지 높아질 수 있다”면서 “그로 인해 다양한 신체적 폐해가 여성에서 더 쉽게 유발되고 알코올 중독도 당연히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5년 마다 한 번씩 조사하는 알코올 사용장애(알코올 남용 및 의존) 유병률을 보면 18~29세 여성의 경우 2001년 4.8%, 2006년 4.7%, 2011년 5.7%, 2016년 6.9%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반면 남성은 같은 기간 11.0%→9.3%→8.1%→7.5%로 감소했다. 30대 여성의 유병률도 1.4%→2.6%→2.0%→2.8%로 늘어난 반면 30대 남성은 11.6%→9.9%→6.9%→4.2%로 줄었다.

이상규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무알코올이나 저도주는 이미 알코올 중독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술에 대한 갈망을 일으키고 재발 위험성을 높인다”고 말했다. 조성준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저도주로 혼술하는 젊은 여성들은 잘 드러내지 않는 문제 음주자, 이른바 ‘샤이(shy) 음주자’ 집단으로 이행될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저도주는 젊은 여성들의 음주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을 줄여 술에 대한 경각심을 무뎌지게 한다. 하지만 알코올이 적게 들었어도 술은 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해국 교수는 “젊은 여성이나 청소년을 겨냥한 주류 마케팅과 광고 규제, 시민·소비자단체의 감시 및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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