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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동 칼럼] 버는 者, 쓰는 者, 갚는 者


명분과 의지만으로 정책 추진
안 돼…타당성 현실성 구체성
결여되면 위험해질 수 있어

복지정책은 불가역적 성격
한번 맛 들이면 끊기 힘들어
남미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빚을 내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낸다면 미래세대의
부담이자 국가 재앙 될 수도

갈수록 태산이다. 여권에서 당근을 내놓자, 야권은 소스까지 곁들였다. 선별복지든 보편복지든 좋다. 코로나로 생존위기에 몰린 서민을 위하고 침체된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명분도 있다.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이자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한데 타당성과 현실성, 구체성이 결여된 명분은 위험하다. 국가정책이라면 더 그렇다. 선물이란 가슴 따스하게 하지만 여야 정치권에서 내놓고 있는 각종 정책은 되레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얼마 전 ‘국민생활기준 2030’이라는 신복지정책을 제시했다. 핵심은 18세까지 아동수당을 주고, 아파 쉬는 국민에게 ‘상병수당’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고 치받았다. 안일환 기획재정부 제2차관도 ‘악어입’을 언급하며 재정적자를 우려했다. “오죽했으면 여당 대표의 말에 반기를 들었겠느냐”고 역성드는 사람이 꽤 있다. 하지만 ‘소심한 반항’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고 폄훼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사마귀가 수레를 막는 것처럼 무모하다는 것이다. 정부 곳간지기로서 고민을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전적으로 홍 부총리의 자업자득이다. 기본소득제와 보편복지를 골자로 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정책에 대한 논란은 더 뜨겁다. 여권 내에서도 찬반이 교차한다. 의도는 좋으나 무책임하다는 견해가 있는 반면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이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엇갈린 평가의 이면에는 인간적 호오(好惡)에 기인하는 측면도 있다. 최종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이 지사 몫이다.

더 한심한 것은 여당이 가덕도신공항을 내놓자 야당은 해저터널까지 더했다는 점이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는 물론 사업비 산정도 하지 않았는데 특별법부터 만들어 대못을 박을 태세다. 이유에 대해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국민들은 다 안다. 정책 자체의 옳고 그름은 전문가 영역이니 거론 않겠다. 텃밭 만들 때도 이렇게 하진 않는다. 분명한 것은 보궐선거든 대선이든 각 후보는 경쟁적으로 장밋빛 복지정책을 쏟아낼 것이 뻔하다. 지난 총선에서 그 위력을 확인한 바이다. 목숨이 경각인데 이것저것 따지다간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도 틀린 건 아니다. 최소한의 국민생명권을 지켜야 한다는 당위 역시 옳다. 그러나 준비 없는 선의 또는 당위론에 강요된 정책은 좋은 결과를 담보하지 못한다. 비정규직 대책이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했던 것이나 전세계약갱신청구권 부작용 사례가 말해준다. 복지정책은 불가역적 성격을 지닌다. 한번 맛 들이면 끊기 힘들다.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일부 남미 국가 사례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 보자. 정치권이 제시하는 정책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방향도 맞고, 당위론에선 옳다. 긴급할 때 재정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일리 있다. 다만 빚을 내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또 빚을 내야 한다면 빚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건 불문가지다. 마냥 박수만 칠 수 없는 이유다. 2000년대 초반 카드대란 사태가 기억에 선명하다. 카드빚 갚기 위해 이 카드 저 카드로 돌려막다가 수백만명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했고, 경제·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겪지 않았던가. 단순하게 말하면 외환위기도 이 지점에서 잉태됐다.

나라 살림과 집안 살림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버는 만큼 쓰는 게 기본이다. 물론 빚도 낸다. 여기까지는 정부나 개인이나 비슷하다. 집안 살림은 버는 사람과 쓰는 사람, 갚는 사람이 대체로 같다. 반면 나라 살림은 버는 사람(국민), 쓰는 사람(정부), 갚는 사람이 다르다. 미래세대 짐으로 남기도 한다. 이 때문에 무책임과 모럴해저드가 생긴다. 그 누구도 코로나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앞으로 이와 유사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그땐 어찌할 것인가?

등 따습고 배부른 걸 누가 마다하겠는가. 비상상황에선 비상한 대책이 필요한 것도 인정한다. 관건은 재원이다. 올해 본예산은 558조원이다. 이 중 93조원 넘는 돈이 빚, 즉 적자 국채다. 여기에 3차례 재난지원금으로 31조원 이상이 풀렸는데 4차 재난지원금을 준비 중이다.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20조원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국가채무는 950조원을 넘었다. 그래서 하는 제안인데 불요불급한 사업은 미루고, 빚을 내기 전에 대규모 세출 조정부터 하자. 그래도 부족하면 증세를 검토하는 게 옳다. 내년에 있을 대선에서 내 한 표의 기준임을 미리 밝혀둔다.

편집인 hd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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