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돋을새김

[돋을새김] ‘총알배송’ 시대 유감

신창호 사회2부장


자동차 사이를 아슬아슬 빠져나가는 배달 오토바이들. 차선도 무시, 신호등도 무시…. 뭔가에 홀린 듯 도로를 질주한다. 대로변에 멈춘 택배 트럭은 교통 흐름이 끊기고 정체가 빚어지는 것도 아랑곳없이 택배 물건들을 상점과 건물 안으로 배달한다. 인터넷에서도, TV에서도, 집집마다 꽂히는 광고전단지에서도 ‘배송은 우리가 제일 빠르다’고 선전한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신선 채소와 음식들이 반나절이면 뚝딱 집집마다 배달되고, 제주도의 은갈치가 이틀이면 서울의 아파트문 앞에 도착해 있다. 맞다. 이렇게 빨리, 이렇게 안전하게, 이렇게 저렴하게 척척 배송이 이뤄지는 건 이곳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속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엄청나게 편리한 우리네 일상은 누군가의 눈물로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배달앱 업체들은 라이더가 정해진 시간에 음식을 배달하지 못하면 페널티를 준다. 음식이 식었다는 고객의 불만에도 페널티를 준다. 그리고 일정 페널티 이상을 받으면 해당 라이더는 영원히 그 업체로부터 추방당한다.

얼마 전 결혼을 앞둔 20대 택배기사가 빈 미용실에 물건을 배달하러 갔다가 주거침입죄로 기소돼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다. 택배 물건을 안전하게 두겠다는 일념에 문이 열린 미용실로 들어간 게 죄였다. 법정에서 이 택배기사는 “관할구역에서 배달한 물건이 자꾸 없어져 좀 더 안전하게 배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기소 전 검찰 형사조정위원회에서 합의를 시도했지만, 미용실 주인은 500만원을 요구했다. 가난한 이 기사는 여윳돈이 200만원밖에 없었고, 결국 합의에 실패했다. 졸지에 전과자가 되자, 택배업체는 그를 해고했다고 한다.

하루 종일 배달과 택배물 분류에 지친 택배 노동자들이 과로로 쓰러지는 일도 부지기수다. 택배 요금은 귀중품이 아닌 한 5000원을 넘지 않는다. 배달 음식 배송료는 이보다 더 싸다. 택배기사들에게 돌아오는 몫은 더 적다. 한 번 배달에 1000원, 2000원을 받아야 하니, 그들의 사전엔 ‘다다익선(多多益善)’만이 존재한다. 하나라도 더 배달해야 생계를 꾸려갈 수 있으니 말이다. 법적으로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이들의 근로시간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르바이트가 아닌 이상 하루 8시간이란 정상적 근로시간을 지키는 택배 노동자는 없는 지경이다.

더 많이 배달해야 하고 더 빨리 가야 하니 교통 신호등이나 차선 관련 법규 따위를 지킬 여유가 없다. 소비자가 원하는 게 ‘빨리빨리’이니, 쇼핑몰도 택배업체도 전부 빨리빨리 움직인다. 빠르지 못한 건 악이요, 빠름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는 철저하게 배제된다. 그렇게 ‘총알배송 배달천국’ 대한민국은 만들어진다. 미국에서 온라인으로 뭔가를 구매해 자신의 손에 받아보려면 최소 3일, 보통 1주일이다. 빨리 받길 원하면 그만큼 배송료는 더 내야 한다. 어떤 때는 상품가격만큼 배송료가 비싸지는 경우도 있다. 느리고 비싸서 좋다는 뜻은 아니다. 정반대인 빠르고 싼 게 좋은 일이지만, 소비자인 우리가 제대로 그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는 의미다.

오늘도 유튜브에선 온갖 ‘국뽕’ 동영상이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만큼 빠르게 안전하게 택배가 도착하는 나라는 없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은 엄청 빠른 배달 음식에 천국이 따로 없다고 느낀다” “택배나 배달료가 이렇게 저렴한데 서비스는 ‘킹왕짱’” 등등이다. 칭찬 일색인 이런 콘텐츠를 볼 때마다 진짜 한국적 배달문화가 선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커피 원두가 아프리카인들의 노동 착취로 생산된다고 흥분하면서 우리는 이웃 아저씨, 형, 아줌마들에게 저임금을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신창호 사회2부장 procol@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