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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쇠말뚝 전설

장유승(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


한때 ‘쇠말뚝 전설’이 유행했다. 일제가 민족정기를 끊으려고 전국 각지의 명산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이야기다.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정체불명의 쇠말뚝이 신빙성을 더했다. 샅샅이 찾아내 뽑아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자 정부도 예산을 들여 제거 작업에 나섰다.

쇠말뚝 정체는 오래지 않아 밝혀졌다. 측량용, 건축용, 또는 군사용으로 설치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일제의 만행에 분노하던 사람들은 머쓱해졌다. 논란이 됐던 책 ‘반일종족주의’는 이 점을 문제삼았다. 쇠말뚝 전설은 반일 감정을 조장하는 괴담에 불과하며, 이를 둘러싼 소동은 쉽사리 부화뇌동하는 ‘저열한 정신문화’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쇠말뚝 전설처럼 구전되는 이야기는 사실인지 거짓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 그런 이야기가 생겼는지,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는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쇠말뚝 전설의 기원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송나라 사람으로 고려에 귀화한 호종단이 고려의 국운을 꺾으려고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이름난 비석을 부수고 사찰의 범종을 녹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호종단은 예종의 총애를 받아 정치에 깊이 관여한 인물이다. 요직을 차지하고 국정을 농단하는 이방인에 대한 불만이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듯하다.

‘택리지’에는 경북 선산의 쇠말뚝 전설이 소개됐다. 당시 구원병을 이끌고 조선에 온 명나라 장수가 선산에 왔다가 쇠말뚝을 박아 지맥을 끊자 영남에서 더 이상 인재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구원병이라는 명분 아래 온갖 횡포를 부린 명나라 군대에 대한 증오가 빚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고, 조선 후기 영남인이 정치적으로 소외된 이유를 어떻게든 설명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이야기일 수도 있다.

강원도에는 강릉부사 한급의 전설이 있다. 한급이 대관령에 쇠말뚝을 박아 지맥을 끊은 뒤로 강릉에서 인재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실록을 보면 한급은 강릉부사 시절 부정부패로 처벌을 받았는데, 그에 대한 지역민의 분노가 이런 이야기로 표출된 듯하다. 조선 후기에 들어 영남인과 마찬가지로 출세가 어려워진 강원인의 불만도 이 전설의 유포를 부채질했을 것이다. 충남 서산 보원사에는 중국 사람이 이곳에 아름다운 기운이 모이는 것을 보고 시기한 나머지 산등성이에 쇳물을 부어 넣어 지맥을 끊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거대한 사찰이었던 보원사가 황폐해진 이유는 지금도 알 길이 없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로 보인다. 이처럼 쇠말뚝 전설은 전국에 없는 곳이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외국인이 수고스럽게 외딴 산속까지 찾아와 쇠말뚝을 박을 리가 있겠는가. 설령 있다 해도 그런 주술적 행위가 인재의 배출과 국운의 향배를 결정할 리 만무하다. 일본은 풍수 관념이 희박해 인위적으로 지맥을 끊었다는 전설이 드물다. 중국에는 더러 있지만 우리처럼 오랜 세월 전국적으로 전승되지는 않았다. 쇠말뚝 전설은 우리가 아니면 지어낼 수 없는 이야기다.

쇠말뚝 전설은 우리의 전통적 자연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땅에도 사람의 혈맥처럼 이어지는 지맥이 존재하며, 이를 끊으면 생명력을 잃는다는 믿음이다. 과학적 근거는 부족하다. 하지만 고려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천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전국적으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비과학적이라도 단순히 미신으로 치부하고 말 것은 아니다. 쇠말뚝 전설은 현실에 대한 불만을 반영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현상을 설명한다. 아울러 이 땅에 대한 강렬한 애착, 이 땅을 지키려는 집념의 산물이기도 하다. 개발과 효율이라는 근대적 명분에 맞서 이 땅이 지금만큼이나마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것은 그 전설을 믿는 순수한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장유승(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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