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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 일자리 정치의 진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역대 대통령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만큼 임기 내내 고용 문제로 시달린 사람도 없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며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있고 운도 따르지 않았다. 취임과 동시에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와 일자리수석비서관까지 설치하며 고용 문제 해결에 공을 들였으나 2018년 고용 실적은 민망할 정도로 나빴다. 전년도에는 취업자가 31만명 증가했지만 2018년엔 10만명에도 못 미쳤다. 그해 성장률이 2.7%였으니 경기를 탓하기도 어렵다.

가장 의심을 살 만한 요인은 취임 1주일 만에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방침과 두 달 후 결정된 최저임금 16.4% 대폭 인상이다. 기업에 큰 충격이었고 노동시장은 일시에 경색됐다. 집권 초기 속도감 있게 대선 공약을 이행한다는 의도였겠지만 두 정책 모두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을 뿐이다.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2019년엔 확장재정 정책과 적극적인 재정 지원 일자리 사업으로 고용 사정이 좀 나아지고 정부도 자신감을 갖게 됐지만 1월 고용 통계가 입증하듯 코로나19 사태가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K방역과 고용유지지원제도에 힘입어 최악을 피한 게 그나마 다행이다. 문제는 코로나 위기를 벗어나더라도 고용 없는 경기 회복이 예측된다는 점이다. 과감한 재정 투입으로 안간힘을 써보지만 결과는 미지수다.

올해는 작년보다 5조원을 더 투입해 총 30조원 규모의 일자리 예산을 편성하고 3조2000억원을 들여 취약계층 일자리 104만개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보고한 기획재정부의 경제 전망에 따르더라도 올해 13만명, 내년 21만명의 취업자가 증가할 뿐이다. 예측대로라면 2018년 이후 5년간 취업자 증가는 연평균 10만명 안팎으로 역대 정권 가운데 가장 저조한 실적을 기록한다. 일자리 정부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다른 정부도 모두 비슷한 길을 걸었기 때문에 문재인정부만 탓할 일도 아니다. 김대중정부에서 이명박정부까지 예외 없이 임기 초반 최대 과제는 외환위기나 신용카드 대란,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경제 위기와 고용 충격을 극복하는 일이었다. 정책 수단은 주로 재정 지원 일자리 사업을 확대하고 노사를 설득해 워크 셰어링 타협을 이끌어내는 정도였다. 이들 정부의 태도가 수동적이었다면 박근혜·문재인정부는 능동형이었다. 긴박한 고용 위기가 아니었는데도 박근혜정부는 고용률 70% 달성을 국정 제1과제로 했고 문재인정부는 아예 일자리 정부를 간판으로 내걸었다. 고용 문제 해결을 정부의 주요 치적으로 삼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런 능동적 고용 전략 또는 일자리 정치는 유럽의 여러 국가들에서 선례를 찾을 수 있고 성공 사례도 꽤 축적돼 있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은 아직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며 일자리 창출에 직접 뛰어드는 식이라면 외국은 노동시장과 복지 관련 제도 개혁에 승부를 거는 쪽이다. 그들도 장기 실업자나 청년 등 취업 애로 계층의 고용을 촉진하는 재정 지원 프로그램이 있지만 사이드 메뉴에 불과하다. 만성적인 고용 위기를 돌파하는 정면승부는 인사이더들의 기득권에 손대는 제도 개혁에서 결판났다. 2000년대 초 독일의 하르츠 개혁이나 1990년대 말 네덜란드의 유연안전성 타협, 1980년대 중반 영국의 노조 손보기 등은 모두 제도 개혁이었다. 일본도 2000년대 중반 이후 정년과 임금 관련 제도 개혁으로 고용 사정이 크게 개선됐다.

한국도 유럽형의 만성적인 고용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과감한 제도 개혁을 거쳐야 한다. 관건은 제도 개혁의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다. 사회적 대화와 타협으로 리스크를 줄여보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노사 단체의 리더십이 취약하기 때문에 대타협은 어렵다. 결국 한국형 일자리 정치가 성공하려면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 제도 개혁의 메뉴와 타협의 알고리즘을 재구성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틀에 박힌 메뉴와 공식 사회적 대화만이 아니라 노사정이 충분한 물밑 대화로 메뉴와 레시피를 사전 조율해야 한다.

노동시장의 연공주의와 정년, 천편일률의 근로시간 제도와 혼란스러운 임금체계, 근로자와 사용자의 개념에 대한 재정의 등 그동안 미뤄둔 개혁 과제는 산더미다. 미래의 고용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요리할 것이냐에 달렸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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