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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테슬라 팬덤과 현대차의 도전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일론 머스크 미국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발언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느 정도 될까. 비트코인에 관한 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지낸 재닛 옐런 재무장관에 버금갈 정도는 돼 보인다. 지난달 22일 옐런이 재무장관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가상화폐에 대해 경고하자 비트코인 가격이 16%나 떨어졌다. 이에 질세라 지난달 30일 머스크의 가상화폐 지지 발언 이후 비트코인 가격은 오히려 20% 폭등했다. 9일에는 테슬라가 15억 달러어치를 매입했다는 증권거래위원회 공시가 나오고 비트코인을 테슬라 승용차 결제에 통용토록 할 것이라는 발표에 가격이 5000만원을 돌파했다.

머스크의 오지랖은 비트코인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지난달 말 개인투자자들의 게임스톱 공매도 전쟁에 끼어들어 SNS 레딧에 ‘게임스통크’라는 단어를 던지자 주가가 급등했다. 시바견을 테마로 제작한 가상화폐 도지코인도 머스크의 잇단 트윗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엄청난 규모의 팬덤을 거느린 그의 영향력 때문인지 ‘팬덤 이코노미’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이런 현상은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해 성공한 경제인들을 영웅시하는 자본주의 천국 미국의 특징을 반영한다. 머스크의 발언이 시장을 교란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가 이끄는 팬덤 이코노미는 불모지로 여겨졌던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분야의 장르를 개척해 선두주자로 우뚝 섰기에 가능하다. 자동차산업은 1930년대 대공항을 딛고 미국 서민들을 ‘중산층’으로 만든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물이다. 그런데 테슬라의 성공 신화가 경쟁력을 잃어가던 자동차산업을 부활시키고 미국인들의 꿈을 다시 깨우고 있는 것이다. 머스크는 화성 이주 프로젝트까지 하나둘씩 실행해 나가면서 미국의 자존심을 살리고 있다. 전 세계 자동차업계와 구글 애플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이 전전긍긍하는 것도 그의 존재감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테슬라에 최대 위협으로 여겨졌던 현대차그룹과 애플의 자율주행 전기차 협상 중단 소식은 더욱 아쉬움을 남긴다. 현대차그룹의 전신인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과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도 머스크처럼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정 회장의 ‘소떼 방북’과 금강산 관광 사업 성사는 한국민들에게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했다.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의 잡스의 스마트폰 브리핑은 한때 전 세계 팬을 사로잡는 문화 현상이었다. 두 회사의 협상은 팬덤을 거느렸던 두 영웅의 후예들 간 빅딜 승부가 어떤 그림을 그려낼지 전 세계의 이목을 끄는 이벤트였다. 협상은 중단됐지만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 미군 원조를 받던 한국의 기업이 이제 미래산업에서 세계 일류기업과 협업 파트너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미국의 지식과 기술을 배우기에 급급한 변방국가 한국이 이젠 미래 자동차 기술로 애플로부터 협업을 요청받는 중심국가로 이동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애플의 비밀주의나 오만함이 협상 중단 원인이며 현대차그룹을 하청업체 취급하려 했다고 비판하지만 이는 단견에 불과하다. 어느 쪽이든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애플이 인류 문명의 한 장르로 개척한 스마트폰만으로는 생존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현대차에 먼저 손을 내민 도전 정신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협상의 문은 열려 있다. 1970년대 첫 독자 모델인 포니 승용차 주행시험장이 없어 해발 265m의 서울 남산을 간신히 올라야 했던 현대차. 세계 일류 기업을 향한 새로운 고지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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