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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 정치 과잉이냐, 정치 실종이냐

임성호(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정치 과잉 시대에 정치가 실종됐다고? 모순되게 들린다. 그러나 틀린 말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 정치가 모든 것을 삼키며 사회 전체를 정치화하고 있는 요즘 정치다운 정치가 사라져 사회를 도탄에 빠뜨리고 있다. 어떤 의미의 정치가 과잉이고 또 다른 어떤 의미의 정치가 실종되었는지 짚어보자. 그래야 도탄에서 빠져나올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정치 과잉은 정치 본연의 영역이 다른 곳으로까지 과도하게 외연을 확장한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정치는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표자들을 뽑고 그들이 공적 결정을 하는 과정을 뜻한다. 주권자인 국민이 정치의 근본 바탕을 이루고 때론 직접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평상시 정치의 주된 행위자는 공적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 선거에서, 그리고 선거 후 국정에서 경쟁하는 의원, 대통령, 정당, 그 밖의 정치인이다. 이러한 정치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꼭 필요하나 본연의 범위를 벗어나 너무 흘러넘쳐선 곤란하다. 다른 영역들이 지닌 각각의 고유한 논리와 맥락이 무시되고 다 정치화된다면 순기능을 기대할 수 없고, 사회가 전체적으로 다양성의 조화보다는 획일성의 전제(專制)로 병들게 된다.

근래 우리나라의 상황이 그렇다. 비정파적 합리성을 표방하는 행정부 관료가 정치에 침잠(沈潛)돼 청와대와 여당의 종복인 기관장들에 휘둘리고 있음은 차치하자.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원칙으로 삼는 검찰과 감사원이 소신을 지키다가 정치권의 간섭과 탄압 아래에 놓인 점은 뼈아프다. 독립성을 생명처럼 중시해야 할 사법부마저 정치화 논쟁에 휘말려 신뢰를 잃고 있음은 국가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다. 공익을 내세우는 시민단체들이 정치의 진영논리로 양극화된 데 더해 언론계, 학계, 교육계도 진실 추구, 지식 창출, 인재 육성이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정치권과 맞물리며 흑백논리로 경직되고 있다. 가속도가 붙은 정치화는 이윤 추구가 작동 원리인 경제계마저 위협하고 있다. 이젠 국민의 일상사까지 정치에 지배당해 이분법적 진영논리가 대인관계의 친소(親疏)를 규정짓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치의 과한 외연 확장이 우리 사회의 조화를 해치고 있는데, 정작 정치 본연의 장 내에선 정치가 실종돼 혼란스럽다. 여기서 정치는 중간적 조정과 원만한 합의를 의미한다. 각종 사회문제를 공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각양각색의 이해관계와 입장 간에 조정이 이뤄져야 하고 서로 양보·타협해 합의에 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정치의 진정한 정수(精髓)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극한 대 극한의 강경 충돌 속에 중간지대는 사라졌다.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중도, 중용은 철 지난 말이 되었다. 조정과 합의는 잊혔다. 숫자 많은 측이 전투하듯이 밀어붙이고 반대 측은 공허한 저항만 하다 지쳐 물러난다.

사회를 바르게 이끌고 국민을 편하게 하는 정치는 현 상황과 반대여야 한다. 정치인이 공적 결정을 내리는 장으로서의 정치는 파급력을 마구 뻗어대지 말고 본분을 지켜야 한다. 조정과 합의로서의 정치는 속히 공적 무대로 돌아와야 한다. 정파적 진영논리가 사법, 행정, 언론, 학문, 교육, 시민단체 활동, 경제, 심지어 종교에까지 번지는데, 각종 문제를 원만하게 풀어줄 정치는 계속 실종돼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미 위기 증후는 명료하게 드러났다. 온 사회가 정치 전면전에 휩쓸린 가운데 국정은 교착에 빠지고 민주주의는 퇴보하고 있다. 국민의 정치 불신은 극에 달해 공적 결정에 권위가 실리지 않는다. 과연 체제가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의구심마저 든다.

정치권의 변화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특히 강자인 집권 세력의 반성이 필요하다. 그들만 잘못한 것은 아니나 현실에 더 큰 영향을 끼쳤고 변화를 이끌 더 큰 힘을 가졌기에 더 큰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다. 집권 세력의 정점인 문재인 대통령은 뒤바뀐 정치의 모습을 바로 잡고자 진두지휘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제라도 정치 본연의 범위를 지키고 정치의 정수인 중간적 조정과 합의를 추구하는 정치인다운 대통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지지층에만 기대는 편향성을 버려야 하고 강경론만 외치는 주변의 분열주의자들을 조심해야 한다. 내 편은 무조건 포용하고 반대편은 적폐로 몰 것인가? 문 대통령이 온 국민을 바라보며 전제적 정치의 과잉을 막고 중용의 정치를 회복시킬지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임성호(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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