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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용 목사의 ‘복음 설교’] 성숙을 향하여 (2)

누가복음 8장 22~25절


바다의 풍랑은 신자에게 성숙을 요구하는 단계다. 그 성숙으로 가는 길에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과정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탁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기대고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신앙의 성숙과 인격의 성숙은 같이 간다. 이것을 분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신앙의 인격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더욱 너그러운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어려움 속에 쉬이 흔들리지 않으며 느긋함으로 잘 견디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인정하기에 잘 흔들리지 않고 기복도 없는 사람이 쉽게 하는 실수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다지 하나님께 목매어 부르짖는 일이 없다.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주관하여 행하시는 일이라 믿기에 기도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 기도를 하나 안 하나 벌어질 일은 벌어진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신앙이 아니다. 이것은 신앙을 가장한 ‘운명론자’이다.

운명론이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운명’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정’과 어떻게 다른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정이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실 때 지성을 가지고, 그 일에 대한 계획과 목표를 가지고 일하신다’는 뜻이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한 인간을 향하여 예정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 코스를 자세하게 준비하여 무언가를 반드시 겪게 한다는 것이 아니다. 예정은 그에 대한 계획과 목표를 가지고 계시고, 그 수준의 사람으로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갖고 일을 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이다.

본문의 풍랑이 딱 그러하다. 하나님께서 ‘두 번의 풍랑을 미리 준비하셨다’라기보다, 제자들에게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고백을 받아 내기 위하여 두 번의 풍랑을 사용하신 것뿐이다.

그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서 두 번 했을 뿐이지, 두 번째는 다른 방법으로 행하실 수도 있다. 그것은 그때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다르다. 그것이 운명과 예정의 가장 큰 차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고 믿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빠진다는 것은 자칫 운명론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는다.

제자들이 그러했다. 8장까지 오는 동안 이들은 예수님에게 개인적으로 아쉬운 소리를 한 적이 없다. 이 말은 곧, 제자들이 자신의 삶을 예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맡겼다는 것이 아니다. 마치 자신들이 예수님과 동역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준비하신 것이 있다. 바로 풍랑 사건이다. 이것은 어부 출신인 이들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다. 분명히 배를 타기 전에 하늘과 바람이 다 좋았다.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고 배에 물이 찬다.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럴 때 제자들이 어떻게 했는가. 예수님께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하고 부르짖었다.(24절)

예수님이 아니면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그를 전적으로 의지한다. 그렇다. 사람은 인생의 절체절명의 때가 오는 순간, 다른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때 비로소 예수님이 보인다. 그리고 내 생명이 예수님 손에 달려 있음을 깨닫고 그분께 자신을 내어 드린다. 맡긴다. 그것이 성숙이다.

신자는 성숙으로 가는 길에 반드시 이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한 번 지나고 가는 과정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내가 싸워야 할 싸움이다. 이것이 삶 속에 장착되지 않는 한 결코 신앙 성숙은 이룰 수 없다. 그것이 신자들이 가야 할 성숙의 경로다.

(미국 버지니아 한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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