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독재·민주화·통일… 굽힘도 멈춤도 없던 ‘투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별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한 집회에서 웃으면서 연설을 하고 있다. 15일 별세한 백 소장은 고문과 투옥에도 굴하지 않으며 4·19혁명 등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합뉴스

한국 사회운동의 거목이었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9세. 백 소장은 고문과 투옥에도 굴하지 않으며 4·19혁명 등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사회운동가였다.

서울대병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했던 백 소장은 이날 오전 영면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씨와 아들 백일씨, 딸 원담(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미담·현담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 장지는 모란공원이다.

1932년 황해도 은율군에서 태어난 백 소장은 해방 이후 부친을 따라 서울로 내려왔다가 분단으로 가족과 생이별을 했다. 정규 교육은 국민학교가 전부였지만 분단의 아픔을 성찰하며 독학으로 통일과 민주화 등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을 키워나갔다. 50년대 농민·빈민운동을 시작으로 현실에 참여한 그는 독재정권 시기 통일·민주화운동에 뛰어들며 사회운동을 주도했다.

백 소장은 60년 4·19혁명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민주화운동에 나섰다. 후유증을 남긴 감옥 생활과 고문도 그때부터 시작됐다. 64년 함석헌, 장준하 선생 등과 함께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여해 투옥되기도 했던 그는 ‘3선 개헌 반대’ ‘유신 철폐’를 주장하며 투쟁에 앞장섰다. 74년엔 유신 반대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투옥됐고 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과 86년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도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백 소장은 87년 6월항쟁 이후 진행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 독자 후보로 출마하는 등 현실정치에 직접 뛰어들기도 했다. 당시 김대중(DJ) 후보와 김영삼(YS)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기 위해서였지만 끝내 민주화운동 세력의 분열을 막지 못하고 선거 이틀 전 후보를 사퇴했다. 제14대 대선에는 재야운동권의 독자 후보로 추대돼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이후에는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며 민중운동에 매진했다.

그는 고령에도 투쟁 현장에 앞장섰다. 2003년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 2009년 용산참사 집회, 2014년 세월호 진상규명 집회 등 각종 사회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2016년 당시 여든을 훌쩍 넘겼음에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 집회에 단 한 차례도 빠짐없이 참석하기도 했다. 백 소장은 ‘장산곶매 이야기’ 등 소설과 수필집을 남긴 문필가이자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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